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교장 선생님 말씀

나의 교직 생활 첫 업무 중 하나는 졸업식이나 입학식 등에 사용하는 교장선생님의 식사(式辭)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짧게, 그리고 격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교장 선생님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내가 식사문을 담당하기 전해 졸업식에서 했던 교장 선생님 말씀은 200자 원고지로 20장이 넘었다. 그 안의 내용은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예전의 교장 선생님들은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학생들이 다 받아들인다고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했다. 그래서 '끝으로'라는 말을 하면서 당부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학생들이 박수를 치는 것을 보고 매우 뿌듯해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을 못하고, 오직 매우 지루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학생들이 박수를 친 것은 이제 끝났다는 안도에서 나온 박수였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남들이 하는 충고의 말이 귀에 거슬리게 된다. 대신 남에게 충고하고 잔소리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연륜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소통보다는 일방향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상사들은 자신의 말이 젊은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혼자 말을 많이 하는 상사를 공경하여 멀리하는(敬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화자와 청자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자기가 할 말을 충분히 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분석하고 그에 맞게 말을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청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청자의 반응을 유도하면서 교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 전 퇴임하신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교장선생님 말씀은 꼭 필요한 한 가지 주제를 잡아서 짧고, 인상적으로 해서 학생들의 박수를 많이 받았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은 매우 길지만 어디에서도 하지 않았던 자기 삶을 꾸밈없이 드러냈고, 인상적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명연설로 꼽힌다. 이렇게 청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짧게 인상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둘 중 하나는 꼭 필요하다. 이것은 남들이 적어주는 식사문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민송기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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