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69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스 2세는 결혼 금지령을 내린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군인이 필요한데 남자가 결혼하면 집 떠나 전쟁터에 나가기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 한 발렌티노 주교는 젊은 연인들을 몰래 교회로 찾아오게 해 주례를 서고 결혼시켜 주었다.
소문을 들은 황제는 발렌티노를 불러들인다. 젊은 사제의 위엄과 확신에 감명을 받은 황제는 로마 종교로 개종하면 처벌을 면해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발렌티노는 오히려 황제를 개종시키려 한다. 분노한 황제는 사형을 언도했고 그 해 2월 14일 발렌티노는 몽둥이질과 돌팔매질을 당한 뒤 효수되었다.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던 발렌티노는 간수의 눈먼 딸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처형을 앞둔 그는 그녀에게 '발렌티노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써서 전했다.
훗날 발렌티노는 성인으로 추앙되고 그의 순교일은 축일이 됐다. 발렌티노를 기려 서양사람들은 매년 2월 14일이 되면 사랑과 감사를 담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선물하는 밸런타인데이는 발렌티노의 축일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는 설이 있다. 밸런타인은 발렌티노의 영어식 표현이다.
이제 3일 후면 밸런타인데이다.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 상술은 일본에서 비롯됐다. 1960년대 일본의 한 제과업체가 '달콤한 사랑을 맛보라'는 의미로 초콜릿을 보내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이것이 확산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독교 성인의 고결한 순교일이 국적불명의 기념일로 탈바꿈해 상술로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잊고 지나칠 수 있는 게 하나 있는데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라는 사실이다. 안 의사는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공소도 포기한 채 뤼순 감옥에서 저술에 심혈을 쏟다가 1910년 3월 26일 장렬히 순국했다.
젊은 남녀가 특정일을 기념해 초콜릿을 주고받는 풍속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일본의 망동을 보고 있자니, 밸런타인데이를 즈음한 일본발(發) 상술이 달갑지만은 않다. '극우 폭주기관차'를 탄 일본은 안 의사에 대한 폄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일본의 관방장관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망언으로 우리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이달 14일에는 밸런타인데이 분위기에 들뜨기에 앞서 안 의사를 기리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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