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바늘과 실로 만드는 사랑

며칠 전부터 아내의 행동이 수상하다. 유난히 바지런을 떤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고단한 워킹맘이라 잠자리에 들기 바쁠 텐데 밤마다 어김없이 뜨개바늘과 실을 꺼내 든다. 고개를 숙이고 실과 바늘을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목도리일까, 장갑일까?' 생일이 코앞이라 은근히 기대가 된다. 시간이 지나 뜨개 실이 형태를 드러내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생일 선물인 줄 잔뜩 기대하고 있던 내가 본 것은 바로 빨간색 '아기 모자'였다. 알고 보니 국제구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에 동참한 것이었다. "이 작은 털모자 하나가 추위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릴 수 있대요."

매년 200만 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날 죽고, 400만 명은 한 달 안에 사망하며, 털모자로 체온을 보호할 수만 있어도 아기의 체온을 2℃ 정도 올릴 수 있어 사망률을 70%로 줄일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아내의 말에 섭섭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

요즘 인터넷이나 지하철역 곳곳에서 '모자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부쩍 눈에 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이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한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이다. 직접 모자를 떠서 아프리카, 아시아 등 체온조절과 보온이 필요한 28일 미만의 신생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저체온증으로 고통받는 개발도상국 신생아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으로 털실과 바늘, 설명서 등이 포함된 키트(kit)를 사서 모자를 완성해 보내면 세이브 더 칠드런이 전달해 준다. 올해는 아프리카 잠비아와 에티오피아,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신생아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지난 6년간 모두 79만4천920개의 모자를 전달했고 키트 판매 수입금 66억원 전액을 모자 전달국의 보건소 건축, 예방접종 등 보건사업에 사용했다. 참여 방법도 아주 쉽다. 지하철역과 같은 오프라인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모자뜨기 키트를 구매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아이들에게 줄 작고 예쁜 모자를 떠서 세이브 더 칠드런에 보낸다. 그 후 세이브 더 칠드런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모자가 무사히 전달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작은 실천이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호소에 자녀를 가진 부모는 물론, 청소년들까지 줄지어 동참하고 있다. 기업이나 단체들도 나눔대열에 참가하고 있다. 3년째 이 사업에 참가하고 있는 DGB금융그룹 부인회가 지금까지 전달한 모자는 300여 개에 달한다. 이번 시즌에도 70여 명의 회원이 캠페인에 참여해 잠비아, 에티오피아 등지의 신생아들을 위해 한땀 한땀 정성껏 모자를 만들고 있다. 대구대교구 삼덕젊은이본당 윤일회(회장 오준석) 청년들도 따뜻한 정성을 모으고 있고, 대경대 간호학과 학생들도 힘을 모아 직접 만든 신생아용 모자를 세이브 더 칠드런 측에 전달했다.

새해 벽두부터 금융기관의 개인정보유출, 조류인플루엔자(AI), 국제 금융위기 등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들의 따뜻한 나눔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봉사와 나눔은 거창한 것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생활 속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실천할 수 있다. 연말연시마다 떠들썩한 모금행사를 그냥 지나쳤다면 올해는 이런 나눔에도 눈을 돌려 보자. 기존의 모금 말고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바늘과 실, 그리고 따뜻한 마음. 나눔에 필요한 조건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