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가 수시모집 위주로 흐르고 있지만 대구 고교들 가운데 여전히 정시모집, 특히 수능시험 공부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대 수시에서 대구 고교들의 실적이 좋지 않은 것도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고 대구 고교들이 정시 대비를 잘한 것도 아니다. 서울대 정시 합격자 중 대구 출신 수험생은 34명이지만 지역 입시 전문가들은 이 중 절반 이상이 재수생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시 대비를 한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구할 수 있는 자료로 자기소개서 작성 특강을 한두 시간 진행하고, 대학교수도 아닌 고교 교사가 각 대학 학과에 진학 시 무엇을 배우는지도 제대로 모른 채 모의 심층면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도로 수시 대비를 잘한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진로, 진학 담당 교사들이 학교를 서로 맞바꿔 특강을 하면서 외부 전문가 초청 프로그램이라 이름 붙이는 것도 황당한 일이다.
일부에선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변화하는 입시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각종 교육 인프라가 집약돼 있고 입시 관련 정보도 발 빠르게 챙길 수 있는 수도권과 지방 상황은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경북 경우 수도권 못지않은 수시 대비 태세를 자랑하는 곳이 있다. 포항제철고등학교와 김천고등학교가 그들. 두 고교의 수시 대비 전략을 살펴봤다.
◆'계획대로, 원칙대로', 포철고의 수시 대비 전략
교육과정은 학교에서의 학습 과목과 성취 목표, 학습 시간 등으로 구성한 것으로 학교 교육의 기본 계획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능시험 공부를 더 한답시고 기존에 짜놓은 교육과정을 무시하는 고교가 여러 곳인 게 현실이다. 가령 수학 Ⅱ, 고급수학 과목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면서 EBS 수학 교재 문제를 풀거나 수학 Ⅰ 과목 복습을 하는 식이다.
하지만 포철고는 다르다. 포철고의 자랑거리는 기본 교과 외에 다양한 특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계획서 상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그 같은 프로그램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포철고의 수시 대비 비결이다. 덕분에 포철고는 수년 동안 20명 안팎의 서울대 수시 합격자를 배출해왔다. 이번 입시에서도 서울대 수시 합격자는 25명으로 모두 경북 지역 중학교 출신 학생들이다.
포철고의 특색 프로그램 운영 방식은 체계적이다. 1학년 때 H.S.P, 2학년 때 학생들을 인문사회과정과 과학기술과정으로 나눠 과제연구(R&E) 프로그램과 A.S.P를 운영하고 3학년이 되면 그동안 이수한 과목과 연계해 고급수학, 고급물리, 고급생명과학 등 심화과목을 듣도록 하고 있다.
H.S.P(Honors Students Program)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대학 교수를 초빙해 수학 심화 학습을 하는 것이다. 영어와 러시아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전문 통역이 수업 보조 역할을 담당한다. 과제연구는 포스텍 등 지역 대학과 연계해 특정 주제에 대한 실험'실습 위주의 연구과정을 진행한 뒤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 보고서는 논문집으로 엮어 입시 때 각 대학에 제출할 전형 자료로 활용한다.
A.S.P(Advanced Science Program)는 대학에서 배우는 수준에 버금가는 과학 과목 학습 과정. 과제연구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자연계열 학생은 이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물리, 화학, 생명과학 분야 중 두 가지를 선택해 이수해야 한다. 1, 2학년 중 희망자를 중심으로 개인별로 주제를 정해 1년간 연구를 진행한 뒤 1인 1 연구 논문을 작성하는 IR(Individual Research)도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다.
포철고 김홍규 교장은 "학교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실력 있는 교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열심히, 성실히 일하는 교사"라며 "수능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기보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운영하겠다는 의지와 교사들의 열정이 어우러져야 수시에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했다.
◆'덕과 지, 체를 함께 갖추기', 김천고의 수시 대비 전략
김천고는 이번 서울대 수시에서 9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지난해 합격자가 2명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이번에 대학입시를 치른 학생들은 전국 단위 모집 자율형 사립고 전환 이후 배출된 첫 졸업생. 하지만 이번 성과를 두고 다른 지역의 우수 인재를 받은 덕분이라고 깎아내릴 수는 없다. 이번 서울대 수시 합격자 9명 가운데 대구경북 중학교 출신이 6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김천고가 우수한 입시 실적을 거둔 비결 중 하나는 독서 활동이다. '토마독'(토요 마라톤 독서교실)은 독서 습관을 기르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김천고 학생 가운데 참가 희망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토요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계속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한 학기에 한 번 토요일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독서삼매경에 빠져 보는 '밤샘 독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책을 읽는 사이 독서 퀴즈, 별자리 관측 등 잠을 쫓기 위한 틈새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한다.
여름방학이 되면 김천고 학생들은 경북대에서 위탁 교육을 받는다. 물리, 화학, 생물 3개 부문으로 나눠 하루 6시간씩 사흘 동안 경북대에서 각종 실험을 해보고 특강도 듣는다. 위탁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기 중 매주 1시간씩 교사들이 관련 기초 교육을 진행한 후 학생들을 경북대로 보낸다. 또 경북대 교수를 초빙, 20시간 강의를 듣고 교사의 지원을 더해 논문을 작성하는 과제연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김천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교육과정은 전인교육에 초점을 맞춘 '송설 삼품제'. 영친왕을 모셨던 학교 설립자 최송설당 여사의 이름에서 명칭을 딴 프로그램으로 '덕'지'체'를 모두 갖춘 학생에게 송설 삼품 인증서를 준다. 덕품 기준은 봉사활동 시간 합계 100시간 이상, 권장도서나 교양 도서 60권 이상 읽기 등이고 지품의 기준은 토익 800점과 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공인 어학성적 기록, 과목 우수상 수상 등이다. 체품 기준은 교내 내한 마라톤에서 순위 30% 이내에 들거나 해발 1천m 이상인 고산 5개 이상 등정하기, 무예 1종목 2단 이상 획득하기 등이다. 물론 학교에서 관련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다.
김천고 이병석 교장은 "학생 4명 이상이 원하면 어떤 과목이든 개설한다는 방침에 따라 야간, 주말을 이용한 맞춤형 특강까지 적극적으로 운영한다"며 "매년 학력 향상비로 3억여원씩 지급하는 재단, 장학금을 지원하는 동문회의 정성도 좋은 성과를 거두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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