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커피와 3B

입대를 앞둔 제자가 얼마 전, 아르바이트해서 첫 월급을 받았다며 원두커피를 사왔다. 제자가 두 봉지의 원두커피 가루를 내미는데, 사실 나는 커피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 그 가루를 먹을 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어 그날 저녁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세트를 주문했다. 1990년대 대학 시절에는 '길다방'이라 불리던 자판기 커피나 커피믹스가 전부였는데, 지난 몇 년 사이 커피전문점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과 원두커피를 직접 내리거나 더치커피를 사서 물에 희석해서 마시는 사람들까지, 커피가 없던 시절은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커피는 현대인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살던 독일의 17세기도 지금과 유사했다. 1500년대 독일에 들어온 커피는 1680년경 함부르크에 첫 번째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후, 독일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바흐가 살던 라이프치히에서는 각 가정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커피하우스에서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커피하우스가 사교의 장이 되면서 소규모 공연이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커피하우스에서 의뢰를 받아 최초의 커피 광고음악이라 할 수 있는 '커피 칸타타'라는 작품도 작곡했다. 이 곡은 커피를 너무 좋아하는 딸을 걱정한 아버지가 커피를 못 마시게 여러 방법을 쓰지만 결국 커피를 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담았는데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에게 딸 리센은 이렇게 노래한다. "아! 맛있는 커피. 1천 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 머스카텔 포도주보다 달콤하죠. 커피가 없으면 나를 기쁘게 할 방법이 없지요. 내가 원할 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자유를 약속하고 내 결혼 생활에서 그것을 보장하지 않는 한, 어느 구혼자도 내 집에 올 필요가 없어요."

독일을 대표하는 음악가인 바흐, 베토벤, 브람스의 이름이 B라는 알파벳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들을 3B라고 부르는데 베토벤, 브람스도 바흐 못지않은 커피 애호가였다. 악성 베토벤은 아침마다 정확히 60개의 원두를 골라 커피를 분쇄하고 추출해서 마셨고 손님이 오게 되면 손님 수만큼 120개, 180개…일일이 세어 커피를 대접했다고 한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진한 블랙커피를 마시고 평생 새벽 산책을 즐겼던 브람스도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음악 애호가들이 커피와 브람스의 음악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

300년 전 독일 음악가들이 사랑했던 커피, 그 커피 열풍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내게는 아직 커피의 향과 맛이 낯설지만, 오늘은 커피 한잔과 '커피 칸타타'를 들으며 제자의 마음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려본다.

신 현 욱(테너'대구성악가협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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