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달성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소년 백욱기는 16세에 염료행상을 하며 장삿길에 나섰다. 일제강점기 말 서문시장에서 자신의 아명을 딴 '백윤기상회'를 열어 섬유산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1950년에는 동국직물(동국무역의 전신)을 창업해 국내 굴지의 섬유업체로 성장시켰다. 한때 국내 30대 재벌에 포함된 대기업의 창업주이면서도 늘 칼국수를 즐겨 먹는 소박함과 실사구시를 중시한 성정, 외모까지 등소평을 닮아 '대구의 등소평'으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대 초 불황으로 대구지역 직물업체들이 도산 위험에 처했을 때는 은행권을 찾아다니며 '돈줄'을 뚫어 대구 경제계의 '대부'(代父)로 대접을 받았다.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과 대구경북 섬유산업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대구 경제를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999년 동국무역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그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2002년 병마로 쓰러지기 전까지 옛 사무실로 출근, 동국무역의 정상화를 이루고자 노력했지만 생전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3년 오늘, 노환으로 별세했을 때 지역 경제인들은 섬유업계의 '큰 어른'을 잃었다고 목 놓아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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