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다음 날 중구청 민원실과 동주민센터로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방천시장의 김광석 길에 사람이 너무 많아 걸을 수가 없다고, 심지어 사고가 날 것 같다며 비상조치를 부탁하는 연락들도 있었다. 조금은 예측을 하고 관광부서에서는 비상근무를 했지만 설 연휴 동안의 나들이 인파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섰다. 350m의 좁은 골목을 찾은 인파가 하루 만 명이라니!
정말 엄청난 방문객 숫자다. 뮤지컬공연의 영향이었을까, 방송사들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김광석의 노래가 음원차트 1위 석권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 덕분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시대를 넘나드는 그의 목소리에 힐링을 기대하는 인파였을까? 이 복잡한 골목, 희미한 가로등의 둔탁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보다 그의 깊은 울림의 불후의 명곡은 얼마든지 훌륭한 음원으로 들을 수가 있는데. 우리의 준비는 아직도 덜 되어 있고, 이 길의 콘텐츠도 아직 부족하기만 한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마음만 간절한 채 우리의 생각은 멈춰 있었다. 그렇게.
2009년. 우리 중구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코스 핵심지역이 되면서 도심환경 개선을 위해 무던히도 골몰하고 있었다. 특히 방천시장은 대구의 다운타운으로 들어오는 관문인데도 전통시장의 쇠퇴와 재개발에 발이 묶여 개선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열악한 시장 주변도로를 배경으로 마라톤 선수들이 뛰는 모습이 전 세계에 송출될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가장 적은 예산으로 이곳을 변모시킬 사람들은 예술가밖에 없다는 결정을 하면서 '별의별 시장'이라는 카드를 들고 그야말로 실험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작가들에게 노크했다.
'방천시장 예술 프로젝트'는 그렇게 인적 끊긴 시장의 빈 점포에 예술가들이 입주하면서 상인들과 어울려 새로운 시장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를 통해 전통시장을 살리는 문전성시 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예술가들과 상인들의 만남으로 시장이 캔버스이자 전시장이 되어갔다. 시장은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우범지역이던 방천둑길 옹벽을 활용할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에서, 방천시장 인근에서 태어난 가객 김광석, 피란 온 방천시장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장사꾼의 천부적 재능을 발견했던 대우의 김우중 회장, 야구선수 양준혁, 이승엽으로 범위를 좁혔다. 결국, 서른둘에 머문 그의 목소리에 빠진 마니아들 덕분에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한 가수 김광석을 스토리텔링한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을 만들기로 했다. 벽화, 사진, 조형물, 트릭아트, 음향설치물 등 다양한 소재들과 함께, 전국을 대상으로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 김광석 마니아들의 거리 음악회 등을 열며 4년에 걸쳐 350m 김광석 길이 소박하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광석 길은 '근대로의 여행' 4코스에 합류하면서 입소문이 났고, 2012년 근대골목이 '한국관광의별'이 되면서 관광객이 더욱 많아지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안전행정부 '향토자원 베스트 30'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김광석 길의 시너지 효과는 엄청나다. 닫힌 상가가 하나씩 열리면서 카페, 공방, 스튜디오, 꽃집 등 마을기업까지 생겨났다. 이제 소문난 식당들은 예약 없인 자리 잡기가 불가능할 정도니 이것이야말로 창조경제, 문화융성의 롤 모델이라 자부한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멈출 수가 없다. 중구 근대골목의 소소한 스토리 한 편이 강력하고도 매력적인 문화 콘텐츠가 되고 관광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체험했기에, 우리 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골목, 관심도 사랑도 발길도 닿지 않은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골목들까지도 슬슬 깨워보려 한다. 김광석 그의 노래가사처럼.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 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윤순영/대구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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