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면 안 되는데
- 1910년 가을호
일곱 음절밖에 안 되는 짧은 시다. 그러나 독자로 하여금 시의 길이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모름지기 시는 글의 길이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사람이 사는 곳에 술이 있었다. 술을 먹지 않아도 사람은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는 곳에 술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밥이 사람의 몸을 살아있게 한다면 술은 사람의 마음에 작용한다.
선배 시인 한 분이 어느 날 술을 함께 마시며 이런 말을 하신 걸 기억한다. "참 이상해. 술은 기분 나쁠 때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 좋을 때 마시면 더 좋아진단 말이야." 술을 아는 말씀이다. 술은 예로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 사람들 곁에 있었다. 잔치에는 흥을 돋우어주고 제사에는 슬픔을 달래주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한 잔의 술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곡물과 과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하던 시대에는 나라에서 술 빚는 일을 금하기도 했다. 곡물을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소주다. 과일을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코냑이다. 보리를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위스키다. 예로부터 귀한 술은 많은 양의 과일과 곡물이 필요한 증류주였다. 그래서 술이 밥보다 귀했다.
술이 귀한 음식이라는 이유는 신에게 제사지낼 때 올리는 음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규보는 '국선생전'에서 '하루라도 이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마음에 비루함이 싹튼다'고 했다. 또 '성정이 맑아서 더 맑히려 해도 맑게 할 수 없고 더 흐리게 하려해도 흐리게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동의보감'에 술을 찾아보면 '많이 마시면 취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술은 귀한 음식이지만 과하게 마시면 인간의 무의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곤 한다. 평소에 더없이 도덕적인 사람도 술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무의식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낮술을 찾는 이는 지나치게 무료하거나 지나치게 외로운 사람일 것이다. 낮술에 취하면 그 부친도 알아보지 못한다 했으니 마땅히 경계하고 삼가야 하리라.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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