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도장 주인의 권위와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약속이라는 묵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장은 또 일순간에 일필휘지하고 마는 사인과는 느낌이 다르다. 마음과 마음, 일과 일을 묶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이라면 누구나 도장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도장은 잊힌 물건이 됐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금융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거래할 때나 은행 통장을 개설할 때도 도장을 찍지 않고 사인으로 대신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특별하고 자신만의 색다른 도장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 도자기 도장
박보순(47) 씨는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성주아트랜드' 공방에서 도자기에 이름을 새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한다. 흙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빚어 구운 다음 이름을 새기고 그림을 그린 후 유약을 바르고 또 굽는다. 뜨거운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도장은 모양도 모양이지만 매끈한 게 이채롭다. 색감도 빛나고 필체 또한 독특하다. 도자기에 한 획 한 획 새겨넣은 전각자의 정성과 숨결이 느껴진다. "예쁘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도장입니다. 반영구적이고, 변색도 되지 않아요." 박 씨는 소장인의 기호와 취향에 맞게 디자인할 수 있어 새로운 이미지의 도장이라고 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은 만큼 박 씨의 도장은 특별하다. 이제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제작기법이다. 디자인도 다양하고 그려 넣은 그림과 글씨체도 각기 다르다. 성인 남자 도장에는 동양화 그림이 들어간 것이 많고, 주부들이 좋아하는 도장에는 꽃이나 고흐'고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 도장에는 별자리나 띠, 곰돌이 등 동물이 많이 들어가 있다. 박 씨는 "특별한 그림을 원하는 사람도 있어요.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상한가를 치는 그래프를, 종교인들은 예수나 성모상을 그려 달라고 한다"고 했다. 이 밖에 커플 도장이나 옥새 등 명품 도장도 있다. "최근에는 자녀나 지인, 졸업, 기업체 단체 선물 등으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박 씨는 도자기 도장은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위'변조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똑같은 모양으로 성형하는 것도 어렵고, 이름과 그림도 칼끝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고 구울 때도 가마 온도에 따라 모양이 달리 구워져 나온다"며 "도자기 도장은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박 씨는 자신의 작품이 도장이기 전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작품'이 되도록 공을 들인다고 했다.
박 씨는 도자기 도장에 음양오행의 기본이 되는 土(흙), 水(물), 火(불), 金(쇠), 木(나무)의 기운을 담는다고 했다. 지니고만 있어도 길운을 가져온다고 했다. "상단부에 오각의 기운을 열어 우주 만물의 원기인 오행을 담았어요. 흙을 중심으로 나무와 불은 양, 물과 쇠는 음이에요."
박 씨가 도자기 도장을 구상한 것은 2009년. "아이들과 도예체험을 하면서 도장을 한 번 만들어봤는데,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좋아했어요. 이름을 반대로 새겨야 하는 점도 재미있었고요. 이후 도장의 모양도 다양하게 하고 그림도 그려 넣었더니 한층 더 세련된 도장이 되었습니다. 선물로 딱이었어요."
그러나 예상외의 일이 발생했다. 가마에 넣고 구웠더니 변형이 일어난 것. 처음 모양과 달리 휘고 뒤틀렸다. 깨진 것도 있었다. 색깔도 변했다. "붉은색을 구웠는데 자주색으로 나왔어요. 1년여를 연구한 끝에 원하는 모양과 색깔의 도장을 만들었어요. 성공한 거죠." 박 씨는 도자기 도장으로 2011 소상공인진흥원으로부터 유망 소상공인 프랜차이즈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새도 만들었다. "2010년 가짜 국새 사건 때 금보다 도자기가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11×11㎝, 높이 15㎝ 크기의 용 모양 국새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줄 곳이 없더라고요." 박 씨는 도자기 도장을 홍보하기 위해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우사인 볼트와 장대높이뛰기 이신바예바, 그리고 의족을 달고 뛰는 피스토리우스 선수 등이 우승하면 선물로 주려고 조직위원회에 타진했다. 그러나 경기 초반 우사인 볼트가 100m 경기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 처리돼 그만뒀다.
박 씨는 오늘도 도자기 도장을 새긴다. "도장의 용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 변화인 것 같습니다. 기존 나무나 자연석 도장보다 예술적이고 위조방지 기능을 부여한 도자기 도장의 대중화에 앞장설 것"이라는 박 씨는 오늘도 작은 우주 속에 혼신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문의 새김도예(www.doyemall.com) 054)931-2522.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