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쉬운 수능'이 사교육 대책일 수 없다

교육부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업무 보고에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며 '쉬운 수능'을 대책으로 내놨다.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나눠 치르던 수준별 선택형 수학능력시험이 폐지되는 올해 영어 영역부터 '쉽게 출제하겠다'고 했다. '빈칸 추론' 문제를 7문항에서 4문항으로 줄이고, 듣기 평가도 22문항에서 17문항으로 줄여 난이도를 확 낮추겠다는 발상이다.

교육부의 '쉬운 수능' 대책은 변별력을 낮춘다는 말에 다름 아니어서 사교육 대책치고는 실망스럽다. 수능을 쉽게 낸다고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만큼 의도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해마다 '쉽다 어렵다'를 반복해 온 것이 수능이다. 수능시험이 변별력 확보에 실패해 고득점자가 양산되는 해에는 '실수'로 한 문제를 틀렸느냐 안 틀렸느냐에 따라 등급이 갈리고, 대학 당락이 엇갈린다. 이런 해에는 영락없이 '로또' 입시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실력이 아닌 실수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재수 학원을 찾았다. '로또' 수능은 재수생을 양산하고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가져올 따름이다. 교육부의 '쉬운 수능' 대책은 로또 입시를 상설화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수능이 변별력을 잃게 되면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우수 학생을 가려내기 위한 방안을 찾게 마련이다. 그 산물이 대학별 논술이고, 면접이고, 입학사정관 제도다. 이런 대입 제도는 입시 다양화라는 명분 아래 정부 의도와는 달리 사교육 시장 팽창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수능은 고교나, 지역에 대한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입 사정 근거다. 그러니 수능은 변별력을 갖도록 이끌어야 한다. '어려운 수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수준을 높이고 더 정교하게 다듬어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입시 제도 다양화가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가져왔다면 역발상도 가능하다. 입시 제도 단순화가 사교육 시장의 안정을 불러올 수 있다. 그것이 수능 위주의 입시다. '쉬운 수능'은 수능 불신을 가져오고 점수 인플레를 초래해 혼란만 불러올 가능성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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