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딸깍! 백열등 'OFF'…"이름처럼 '열등' 한 건 아니었습니다"

딸깍!

스위치가 내려집니다. 불이 꺼집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준 이후, '인간이 발견한 제2의 불'이라는 찬사와 함께 인류와 함께해온 백열전구가 바야흐로 인류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이 1879년 백열등을 인류에게 선물한 이후 130여 년만입니다. 이제 '인류의 세 번째 불'이라며 등장한 LED에 설 자리를 빼앗길 처지입니다.

한국 정부에서는 지난 1월 1일부터 국내에서 25W 이상 70W 미만 백열등을 만들지도, 수입하지도 못하게 금지했습니다. 이에 앞서 70W 이상 150W 미만은 이미 2012년부터 같은 조치를 당했습니다. 지금 한국에 저와 같은 백열등이 약 3천만 개 있다고 합니다. 2008년에 6천200만 개였다는데 불과 5년 만에 반 토막이 되었다고 합니다. 격세지감이지요.

이에 매일신문은 100여 년간 우리를 위해 봉사하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게 된 백열등 선생을 모시고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자, 시작해볼까요?

홍헌득기자 duckdam@msnet.co.kr

◇백열등 선생의 회고

"이름처럼 '열등' 한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 저를 본 40년 전 시골 아이들의 놀란 눈망울이 아직도 선한데….

골목길 가로등으로, 기계소리 분주하던 공장의 밤을 밝히며 보람도 많았죠. 하지만 이젠 떠나야 할 때…."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추운 날씨에 이렇게 모여들 주셔서 감사… 쿨룩쿨룩… 어, 이거 죄송합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니 몸이 영 말이 아니네요. 숨도 가쁘고.

얼마 남지 않은 제 생을 되돌아보고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여러분을 초대했으니 조금 이야기가 길어지더라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할까요. 제 이름은 백열등입니다. 성이 백이고 이름이 열등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냥 백열등이라고 불러주세요. 백열등이라고 그동안 제 삶까지 그리 '열등'했던 것은 아니랍니다. 허허, 농담이고요. 요즘은 형광등이다, 삼파장이다 하며 저보다 일도 잘하는 전구들이 워낙 많아서 많이 주눅이 들긴 합니다. 최근엔 LED라는 전구도 있더군요.

한국에서 산 지도 120여 년 되었네요. 정부에서 25W 이상 70W 미만인 제 형제들을 올 1월부터 만들지도 해외에서 들여오지도 못하게 했다는군요. 여러분도 아시는지 모르지만 70W 이상 150W 미만은 이미 2012년부터 같은 조치를 당했고요. 지금 한국에 저와 같은 백열등이 약 3천만 개 있다고 합니다. 2008년에 6천200만 개였다는데 불과 5년 만에 반 토막이 되었다는군요. 격세지감이지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조명등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니 당연하기도 하지요.

◆1879년 태어나 한국엔 1887년에

이제 슬슬 제 살아온 얘기로 들어가 볼까요?

저는 원래 미국 태생이고, 날 낳아주신 분은 토머스 에디슨이라고 아주 유명한 발명가셨죠. 1879년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들에게 빛이란 태양과 등잔, 램프, 양초 등이 고작이었다고 해요. 오늘날처럼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힐 순 없었습니다. 태양빛은 밤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인간들은 해가 지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을 겁니다. 등잔이나 양초는 어둠을 한 발짝 물러나게 할 정도였죠. 그런데 제가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 어땠을까요. 상상이 되시나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에게 불을 가져다준 이후 '인류가 발견한 두 번째 불'이라느니 하면서 흥분했었죠. 그런데 요즘은 LED를 '인류의 세 번째 불'이라며 추어올리더군요, 허허.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가 언제더라. 서울 경복궁이란 곳에 제가 처음 왔는데 1887년 3월 6일, 아직 쌀쌀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이었지요. 건창궁 앞에 저와 함께 750개의 백열등이 처음 불을 밝혔는데, 고종 황제께서 친히 나오셔서 축하해 주셨지요. 그때는 궁궐 안 연못의 물을 끌어 발전기를 돌렸던 때라 툭하면 불이 꺼져 버리기도 했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다들 신기해하더군요.

그로부터 13년 후인 1900년 4월에는 일반 백성들도 우릴 구경할 수 있게 되었죠. 서울 종로 전차 길에 가로등 3개가 불을 밝히기 시작했죠. 그다음 해엔 일본인들 상가 지역인 충무로 진고개에 백열등 600개가 한꺼번에 점등되었죠.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요. 지금이야 전국 어디를 가나 전기가 없는 곳이 없으니 말이에요. 이렇게 전국 어디나 전기가 보급되고 저희들 전구와 함께 생활하게 된 게 그리 오래된 건 아니랍니다. 1987년이 되어서야 전국 전기 보급률이 99.8%에 이르거든요.

◆전기를 처음 본 시골 마을 모습 생생

제가 살아오며 겪었던 재미난 이야기나 좀 해볼까요. 인간들과 어울려 살면서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가슴 아픈 일 참 많이 보아왔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처음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한 40년은 되었나 그럴 겁니다. 저녁 나절 첫 스위치를 올릴 때 눈이 휘둥그레져 놀라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개구쟁이들은 "야, 불이다 불"하며 마당을 뛰어다니며 좋아들 했죠. 그날 밤 온 가족이 대청마루 백열등 아래에서 저녁을 먹고 밤늦게까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더군요.

깜깜하던 골목길도 머지않아 환해졌답니다. 마을 공터가 환해지자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모여들었죠.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하며 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군요. 저녁 늦은 시간까지 타작을 할 때면 장대에 걸린 제가 온 마당을 환하게 밝혀주기도 했죠. 겨울밤 골목길에 서서 제가 깜박 졸고 있을 때 무슨 소리에 얼른 눈을 뜨면 저기 멀리서 "찹쌀~~떡! 메미일~묵!" 하며 걸어오는 아저씨도 보였죠. 저는 그 마을에서 지낼 때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답니다.

도시에서도 저는 여러 곳에서 일했답니다. 어느 섬유공장에서는 야간근무하는 여공들의 바쁜 손놀림을 환히 비춰주었죠. 나이도 어린 여공들의 그 날랜 손놀림들이라니. 그곳에서 24시간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저도 잠 한숨 못 잤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많았죠.

퇴근길 제가 자리를 지킨 곳은 포장마차였습니다. 좁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소주 한 잔에 곰장어를 앞에 두고 하루의 피로를 씻는 손님들을 구경하며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손길이 바쁠수록 저도 신이 나서 이리저리 흔들렸답니다. 연탄불에서 올라오는 곰장어 연기에 눈이 매울 때도 있었지만요.

늦은 밤 골목 어귀 가로등으로 일할 때는 불빛 아래에서 속삭이는 연인들의 밀어를 들으며 제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죠. 물론 그 연인들이야 눈치 채지 못했겠죠?

◆우습고 재미있는 사건들도 많아

저 때문에 일어난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 저를 본 어떤 촌로들께서는 담뱃불을 붙이려고 전구를 뺀 소켓 구멍에다 곰방대를 집어넣었다가 감전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요. 불이 나오는 곳이니 당연히 담뱃불도 붙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겨울 가난한 자취생이 살던 방에선 이런 풍경도 있었답니다. 발이 시렸던 이 학생은 묘안을 떠올렸죠. 따뜻한 전구를 담요에 싸서 발 사이에 감았답니다. 전구에서 나는 열이 난로 역할을 한 거죠, 하하. 물론 효과는 확실했죠. 하지만 어찌 잘못하다가 그만 저를 밟아 깨져버리는 사고가 나기도 했죠.

이건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던 거지만 제 형제 중의 누군가가 얘기해 주더군요. 전기가 찌릿찌릿하니까 한 꼬마가 배 속의 회충을 '감전시켜' 죽여보겠다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했답니다. 그래서 전구를 빼고 소켓 안에다 혓바닥을 조심스레 갖다 대었겠죠? 결과야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죠? 하하. 그 당시야 전압이 110볼트밖에 안 되었으니 망정이지 지금 같았으면 정말 큰일났겠죠.

이유 없이 저를 괴롭힌 악동들도 생각나네요. 학교 다녀오는 길에 서 있을 때였는데 몇 녀석이 다짜고짜 전봇대에 높이 달려 있는 저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겁니다. 몇 번이나 계속 던져 결국 제가 깨져버리기도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전구 깨기 내기였다나요, 참.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 하겠지만…

아, 얘기를 하다 보니 너무 오래 여러분을 붙잡아두고 말았네요. 이제 마무리를 해볼까요.

사람들도 태어나서 자라고 죽고 하잖습니까? 우리 전구들의 운명도 비슷한 것 같아요. 태어났을 땐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축하해주고 했지만,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사람들은 보다 더 효율이 높은 제품을 만들어 냈죠.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LED란 친구는 우리 백열등보다 에너지 효율이 10배나 높다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전기는 10분의 1밖에 먹지 않으면서도 똑같이 밝다더군요. 그에 비하면 우린 많이 뒤처지긴 하답니다. 에너지의 95%를 열로 발산해버리고, 겨우 5%만이 빛으로 전환되거든요. 수명은 또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저희 백열등이 1천 시간 정도인데 LED 군은 수명이 무려 2만5천 시간이나 된다는군요. 애초부터 경쟁이 안 되는 거죠. 한국에서 저희를 퇴출시키려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한국처럼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 그래서 위험할지도 모르는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해내야 하는 나라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섭섭하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만 일반용이 아닌 인테리어 조명용으로는 계속 사용해 주신다고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긴 합니다. 아, 너무 오래 이야기를 했나 봅니다. 힘이 부치네요. 잠시 눈을 좀 붙여야겠습니다. 안녕히들 가십시오.

홍헌득기자 duckd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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