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용에서 아름다움으로…무한한 변신, 조명의 세계

공간을 '밝히는' 빛, 공간을 '꾸미는' 빛, 공간을 '창조하는' 빛

레스토랑 겸 갤러리인 누오보는 자연 빛과 인위적인 조명을 적절히 섞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층 일부는 천장을 만들지 않고 3층과 연결해 멋스러운 조명을 달았다. 성일권기자
레스토랑 겸 갤러리인 누오보는 자연 빛과 인위적인 조명을 적절히 섞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층 일부는 천장을 만들지 않고 3층과 연결해 멋스러운 조명을 달았다. 성일권기자

빛에도 정서가 있다. 얼굴 잡티까지 다 드러나는 형광등 불빛보다 노란 백열등 불빛 아래서 하는 사랑 고백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최소 전력으로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했던 조명이 이제는 공간의 분위기와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필수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조명은 집과 상점 등 독립된 공간은 물론 도심 전체의 이미지를 바꾸기도 한다. 빛과 조명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스칸디나비아, 조명의 시작

요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 대세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북유럽풍'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등 북유럽을 동경하는 인테리어가 많이 등장한다. 이곳에서 인테리어가 발달한 데는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넓은 땅과 추운 날씨, 적은 인구, 오염되지 않는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있는 북유럽인들에게 집은 삶을 위한 공간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점이다. 바깥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인테리어와 디자인에 큰 관심을 쏟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야 해 '불편함을 파는 브랜드'라고도 하는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도 스웨덴에서 시작됐다.

현대 조명이 가장 먼저 발달한 곳도 북유럽이다. '장식의 생략'을 강조하는 북유럽 인테리어에서 조명은 공간을 밝히는 역할과 디자인 소재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여기서 덴마크 디자이너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을 빼놓을 수 없다.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현대 조명의 개척자로 '빛을 디자인'한 사람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 전기가 보급된 것이 1987년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북유럽에서는 훨씬 이전인 반세기 전부터 디자인으로서의 조명을 고민한 셈이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전기 조명은 석유와 가스등을 제치고 인기몰이를 했다. 하지만 전깃불의 빛은 너무 세서 온화하고 따스한 빛을 만들지는 못했다. 폴 헤닝센은 이런 불빛이 성에 차지 않았다. 1924년부터 실내등을 디자인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눈부심을 줄이고, 은은한 빛을 내는 조명을 만들었다. 그의 최고 작품으로 알려진 'PH 아티초크'(PH Artichoke)는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둠만 밝히는 조명, NO!

조명을 예술로 승화시켜 감동을 이끌어 내는 이들도 있다. 1932년 태어난 독일 출신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Ingo Maurer)는 알전구에 날개를 단 작품인 '루첼리노'(Luchellino)로 유명하다. 날개를 단 조명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이 작품은 조명이라기보다 예술작품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품만 만든 것은 아니다. 잉고 마우러는 생활 밀착형 디자인도 만들었다. 철사와 문구용 집게, 메모지를 조합해 만든 '제텔즈'(Zettel'z)가 이런 예다. 책상에 널리고 널린 문구용품을 샹들리에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디자인 캐리커처 2'에서 김재훈 작가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타이포그래피(활판술)를 공부한 잉고 마우러는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를 원했다. 그는 공간을 밝히는 조명등에 예술의 옷을 입히려고 애를 썼다"고 잉고 마우러를 평가했다.

조명은 공간의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대구 수성구 삼덕동의 레스토랑 겸 갤러리 누오보는 자연 빛과 인위적인 조명을 적절히 섞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 곳이다. 이달 10일 오후 2시,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시간에 찾은 2층 레스토랑에는 확 트인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차곡차곡 쌓였다. 배경 음악인 '데스페라도'(Desperado)와 노란색 조명,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남아있는 낡은 나무 천장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이 건물 건축가는 자연 빛과 인위적인 조명을 적절히 섞는 데 초점을 뒀다. 낮시간, 철사로 얼기설기 엮인 조명은 장식 효과를 낼 뿐 공간을 밝히는 것은 천장 유리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다.

빛은 담는 소재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진다. 여기에 착안해 창문 LED 조명에 아크릴 대신 두꺼운 전통 한지인 '삼합지'를 붙여 아늑한 느낌을 더했다. 이 건물을 건축한 피에이엔 디자인 이용민 대표는 "불투명한 유리의 질감이 빛을 필터링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만들어낸다"며 "화장실로 가는 통로에도 작은 창을 내 외부 경관이 액자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는 동시에 따스한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 레스토랑에 사용된 조명은 모두 7종류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조명은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역할에만 충실하다. 누오보 김강우 지배인은 "레스토랑 건축에 1년이 걸렸을 만큼 세심하게 신경을 많이 썼다. 2층 조명은 이탈리아 '알레시'라는 브랜드 조명으로 하나에 100만원이 넘지만 튀지 않는다"며 "우리 가게에서 조명은 튀지 않게 식상한 공간을 분위기 있게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최고 빛은 자연이 주는 것"

작품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자연에서 나오는 빛이다. '풀꽃 갤러리'로 알려진 대구 수성구 중동의 갤러리 아소는 조명을 최소화하고 자연 빛을 극대화한 공간이다. 아소가 위치한 곳은 주택가다. 평범한 단독주택들 사이에 숨어 있는 콘크리트 외형의 갤러리는 소박한 풀꽃을 전시하는 공간답게 튀지 않는다.

아소는 단독주택에 있는 지하 온실을 개조해 만들었다. 갤러리의 주인은 풀꽃이다. 갤러리도 꽃의 생애 주기에 맞춰 3~6월, 9~11월에만 문을 연다. 갤러리 아소 조덕순(65'여) 관장은 "지금은 꽃이 잠자고 있는 시기여서 갤러리에 작품이 없다"며 수백 개의 꽃이 모여 있는 화실을 보여줬다.

꽃이 자연의 품에 있을 때 가장 잘 자라듯이 갤러리 곳곳에는 자연을 최대한 활용한 흔적이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인공 연못. 천장이 없는 연못은 하늘을 담는 캔버스다. 그래서 물에 비치는 구름과 별, 달, 비 등 하늘의 모든 것이 작품이 된다. 조 관장은 "풀꽃을 전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물과 빛, 바람이 필요했다. 아무리 좋은 조명도 자연 빛을 따라갈 수는 없다"며 '하늘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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