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노래가 희망됐으면" 대구 베리따스 남성 중창단

10여 명 삶의 이력도 제각각, 무대 서며 하느님 사랑 실천

대구뿐 아니라 타지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베리따스 남성중창단.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뿐 아니라 타지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베리따스 남성중창단.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진리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대구 서구 중리동은 희뿌연 연기가 솟아나는 굴뚝과 바삐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 소음,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과 무거운 짐을 싣는 이주 노동자들이 오가는 그야말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런 삭막한 공장 한복판에서 매주 금요일 밤마다 경쾌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남성들의 우렁찬 노랫소리가 울려펴진다. 이곳에 베리따스 남성중창단의 보금자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창단은 하느님의 뜻

지난해 5월, 가톨릭 남성 신자들로 구성된 베리따스 남성중창단은 대구뿐 아니라 타지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리따스(VERITAS)는 라틴어로 '진리'를 뜻하는 말. 순수 아마추어 앙상블인 이들은 서재석(F. 하비에르) 단장을 중심으로, 이선경(엠마누엘라'여)씨가 지휘를 맞고, 김남수(그레고리오) 씨가 트레이너를 맡고 있다.

그 외에 테너에 이동규(요셉) 김용기(라파엘) 배태만(레오) 손수성(안드레아), 베이스에 안충기(요아킴) 이성덕(요셉) 장영길(사도요한) 장갑수(미카엘) 김종운(프란치스코) 씨 등이 멤버로 활동 중이다.

특히 지휘자 이선경 씨와 트레이너 김남수 씨는 부부 사이다. 김 씨는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다니다 그만두고, 이 씨는 경북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부부가 나란히 대구가톨릭대 음악대학에 입학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씨는 대가대 작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그레고리오 성가와 성음악과정을 이수했다. 또 김 씨는 대구남구햇빛합창단 지휘자이자, 대구시지뮤직아카데미 지휘자, 그리고 뮤직&레코딩 명음클래식 대표를 맡고 있다.

처음부터 중창단을 만들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5월, 프란치스카눔 평화미사에서 좀 더 색다른 편성을 선보이기 위해 남성성가대로 봉헌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됐고, 이를 위해 인근의 평리성당, 감삼성당 남성 신자들이 함께하면서 10명의 남성중창단이 급하게 마련됐다. 급조된 중창단이었지만 이날 미사는 대성공이었고, 준비와 연습 과정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낀 단원들이 이 모임이 앞으로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앞다퉈 내놓으면서 중창단 출범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가장 해결이 어려웠던 연습실은 서재석 단장이 이불공장 창고를 내어주면서 마련할 수 있었다. 폐허와도 같은 공간을 단원들이 직접 공사를 하고 십시일반 필요한 물품을 기증하면서 사무실을 단장해 갔다.

◆노래로 나누는 사랑

10여 명의 단원들은 제각각 인생역전의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늘 생활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해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살 때 심한 고열을 앓은 뒤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지체장애를 갖게 된 서재석 단장. 눈물겨운 노력 끝에 현재 직원이 20명인 이불제조업체 대표가 된 그는 평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간식과 학용품을 지원하고, 자투리 원단으로 이불을 만들어 홀몸노인에게 기증하는 등 자선을 실천해왔던 그는 이제 노래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1500cc모터사이클을 취미로 타는 장영길 고문은 반월당에서 '착한 밥상'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장애우 등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6년 전 화재로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기도의 힘으로 극복하며 노모까지 일곱식구가 옹기종기 살아가는 김용기 단원, 전자피아노의 등장으로 침체된 피아노 시장 속에서도 피아노 조율사로 외길을 가고 있는 이동규 단원, 결혼 3개월 차 신혼부부로 근무지가 포항이지만 주말마다 연습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안충기 단원, 동네 궂은 일을 주저없이 도와주는 동네해결사 장갑수 단원 등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창단 이후 이들은 대구 프란치스카눔 평화미사,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연주회 등 여러 무대에 섰던 베리따스 남성중창단은 지난달 26일 영호남 화합을 위한 벌교성당 초청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광주대교구 벌교성당 주임사제를 맡고 있는 홍진석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역시 대가대 음악대학 대학원에서 종교음악을 전공한 것이 인연이 됐다.

서재석 단장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목소리로 서로 화음을 이뤄 노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은총이며, 저희의 노래가 모든 분들께 희망이라는 감동으로 가슴깊이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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