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거의 반백수 생활을 하고 있으니, 꽤 많은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게 됩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때문에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줄었다지만, 아직 많은 이야기가 텔레비전에서 생겨나죠. 낯선 사람이나 친한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꼭 빼놓지 않는 이야기는 "그거 봤어요?"일 겁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나 혼자 산다'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꽃보다 할배'. 이 밖에 요즘 잘나가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묶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관찰 예능'이 그것입니다. 한때 '무한도전' '패밀리가 떴다' '남자의 자격' 등으로 주목받았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있었죠. 관찰 예능이 리얼 버라이어티와 다른 점은, 바로 '사회자'가 없다는 겁니다. 사회자가 없기에, 연출진은 출연자 개인을 보다 집중적으로, 그리고 사적으로 다루는 게 가능해집니다.
어떤 하나의 주제가 강조되어 출연자가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만 있을 뿐 출연자가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과 48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빠, 유럽에서 자신들의 여행을 만들어가야 하는 할아버지. 그들이 하는 중간의 인터뷰는 출연자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출연자 '개인'을 더욱 부각하는 장치인 셈이죠.
이렇게 '리얼 버라이어티'나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가 된 것은 이전 다른 형태의 프로그램이 주던 뻔한 포맷에 대한 시청자의 피로감 때문이라고 분석됩니다. 케이블 방송을 통해서, 미국식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의 포맷이 수입된 것도 큰 자극제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대중적인 인기를 끈다는 것은 우리 사회 역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때 미니홈피를 통해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 스토리를 통한 일상 공유 정도는 이전의 시절을 훨씬 뛰어넘죠. 이제는 실시간으로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합니다. 이미 우리도 주변을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셈입니다. 관찰 예능 형식의 프로그램 역시도 우리 사회의 이러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이 '관찰 예능'의 이면에는 분명히 무언가 더 있습니다. 프랑스의 문예학자, 르네 지라르는 자신의 책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욕망 이론을 이야기합니다. 신이나 고정된 계급이 사라진 현대의 욕망은 '개인은 자율적이며, 또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 아래 출발합니다. 지라르는 이것을 '거짓 약속'이라 했는데, 주변에 욕망할 것이 가까이 있을수록, 욕망의 정도는 더욱 강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현대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서로 욕망하는 관계에 있게 됩니다.
관찰 예능이나 현재 지금 우리의 모습 역시 지라르가 설명한 욕망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노력만 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 기존의 어떤 프로그램 형식보다도 시청자 가까이 있습니다.
'트루먼 쇼'란 영화 이야기를 아마 아실 겁니다.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그렇게 노출되고 있다는 진실을 안 순간,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딜 가든 숨을 곳은 없습니다. 그는 결국 평생을 살았던 세트장 밖으로 나가기를 결심합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 우리도 트루먼과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트루먼과 달리 우리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중계하며, 동시에 남의 삶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미래의 트루먼은 아마 세트장 섬의 생활을 즐길지도 모르겠네요.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는 셈일 겁니다. 어차피 욕망할 거, 텔레비전 속에 머물지만 말고 가끔은 현실에서 욕망하고 시도해 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과연 '모든 것은 가능'한지 몸소 확인하면서 말입니다.
대구경북 대학생문화잡지 '모디' 편집장 smile5_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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