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비행기

거제도로 가는 길이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시리도록 푸른 하늘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날아가고 있다. 문득 가슴 싸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지난해 봄이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승용차가 중앙분리대에 부딪치면서 전복돼 얼굴과 머리에 심한 외상과 골절상을 입은 어린이 한 명과 가벼운 부상을 입은 아이 어머니가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아이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신경외과에서 뇌출혈 제거 수술을 받았고, 성형외과에서는 얼굴 뼈 골절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어머니는 소수술실에서 얼굴의 상처를 봉합한 후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이튿날 회진할 때 아이 옆에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한 손에 장난감 모형 비행기를 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일반 병실에 입원해 있었지만, 생명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안타까움에 중환자실에서 24시간 아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가 비행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집에도 장난감 비행기가 많다고 했다. 자기가 이 비행기를 들고 있으면 아이는 비행기가 보고 싶어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아이를 회진하러 갈 때마다 비행기를 든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어머니의 말대로 비행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부스스 눈을 뜨며 "엄마는 괜찮아?"라고 물어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머니의 정성에도 며칠 뒤 아이는 머리수술 후유증으로 안타깝게도 숨지고 말았다.

그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는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몇 달 뒤 회진을 돌기 위해 중환자실로 들어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한 여인이 한 손에 큰 모형 비행기를 들고 병실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바로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그 아이의 어머니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하니 "우리 애가 이번에 새로 나온 신형 모형 비행기를 가지고 싶다고 해서 사 가지고 왔어요. 근데 우리 아이가 없어요!!"라고 했다.

간호사들의 말로는 전에도 몇 번이나 비행기를 들고 와선 아이를 찾았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바쁜 일상을 핑계로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따뜻한 배려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머니에 대한 인간적인 위로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의사의 본분이 단순히 질병 치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관계된 모든 고통을 진단하고 환자를 둘러싼 상황이나 주변의 슬픔까지 둘러보며 함께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비행기가 나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박대환 대구가톨릭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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