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학 시절 편도 항공표 한 장 손에 쥐고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신문사에 입사해서도 여러 나라로 외국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래저래 가 본 나라를 대충 헤아려도 40여 개국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이 중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나라도 적잖지만 잘사는 나라가 더 많다.
잘살든 못살든 세계 여러 나라를 가보고 느낀 것은 '우리나라가 제일 살기 좋다'는 거였다. '나가면 애국자가 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최고였다. 최근의 얘기만이 아니라 20년 전 배낭여행을 하며 20여 개국을 돌아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통, 공공요금, 치안, 전력, 의료 등 우리나라만큼 좋은 곳을 찾기 어려웠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을 동경하며 살았지만 사실 '우리나라'만 한 데가 잘 없다.
시야를 좀 더 좁혀보면 대구도 마찬가지다. '먹을 것 없고, 볼 것 없는' 도시에다 '보수꼴통' '고담도시' '사고도시' 등 온갖 좋지 않은 수식어, 오명이 붙어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들안길을 비롯해 닭똥집골목, 곱창 거리 등 특색 있는 음식 거리도 많고, 막창에다 찜갈비, 복어불고기, 납작만두, 누른 국수 등 내세울 만한 이색적인 먹을거리도 즐비하다. 또 산이면 산, 강이면 강, 공원이면 공원, 근대골목, 사찰, 유적지 등 볼 만한 곳도 경상도 말로 '천지삐까리'다.
이뿐 아니다. 도로망, 교통, 음식값 등 물가, 교육, 문화 생활, 주거 환경 등등 살기 좋은 여건들이 이렇게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고르게 잘 갖춰진 곳도 없다. 그런데 우리만 잘 모르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자랑은커녕 숨기고 위축되기에 급급하다. 자랑하고 내세울수록 빛이 나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법조계도 비슷하다. 권력이나 정치적 입김 등에 재판 결과가 좌우된다는 불신이 여전하고, 재판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불만, 막말 판사 등 자질론도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 힘 있고,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은 법 앞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좀처럼 걷히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못 미더워'하는 우리나라 사법 제도가 사실은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해마다 실시하는 세계 각국의 기업환경보고서(Doing Business) 중 민사 사법 제도 부문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조사 대상 189개국 중 독일, 미국 등을 제치고 당당히 세계 2위에 올랐다. 그것도 3년 연속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신뢰 등을 높이려고 조사를 의뢰한 게 아니다. 세계은행이 세계 각국의 기업환경을 조사해 발표하고자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 기업환경보고서다.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기업 관련 소송에 걸리면 소송 기간 및 비용, 투명성 등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안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너무 인색하다. 그래서 더욱 채찍질하며 짧은 시간에 급속도의 발전을 이룩했지만 이젠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사랑하고, 아끼고, 자랑할 때가 됐다.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더 많이 '자랑'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정말 '자랑'할 게 더 많아지고, 더 좋은 한국, 대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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