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출구전략, 1994년, 2004년, 그리고 2014년

미국의 '돈 풀기 축소'는 이제 기정사실이 된 것 같다. 버냉키에 이어 이달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새 의장으로 취임한 재닛 옐런도 얼마 전 하원 청문회에서 지난 5년간의 돈 풀기에 대한 출구전략으로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등 국제 IB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내년 3월 이전에 미국이 정책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돈 풀기를 중단할 뿐 아니라 이미 풀린 돈까지 금리를 올려 거둬들일 거라는 얘기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만약 연준이 돈줄 죄는 시기를 놓친다면 자산 버블이 발생해 또 다른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그러면 기정사실이 돼버린 미국의 돈줄 죄기는 과연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떻게 추진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세계 각국의 이코노미스트들은 현재 미국의 돈줄 죄기 상황과 관련, 1994년과 2004년의 출구전략 사례를 자주 비교한다. 대표적인 출구전략 조치로 거론되는 이들 두 사례는 모두 최근의 상황에 대해 각각 다른 관점에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1994년 상황부터 살펴보자. 당시 연준은 1994년 2월부터 1년 동안 사전 예고도 없이 기준금리를 3.0%에서 6.0%까지 무려 7차례나 인상했다. 이는 미국 국채는 물론 국제 장'단기채의 금리 급등을 가져와 단기외채 비중이 높은 남미국가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반면 2004년의 출구전략은 충분한 사전 시그널을 준 후 그해 6월부터 2년에 걸쳐 금리를 1%에서 5.25%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렸고 세계경제도 동반 회복했다. 하지만 이때는 세계경제가 회복됐음에도 출구전략 속도가 너무 느려서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이 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의 주택 대출이 과도해지면서 2008년 주택버블 붕괴를 시작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결국 이들 두 사례는 모두 금융위기의 씨앗으로 지목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속도다. 1994년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남미와 아시아 국가의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반면 2004년에는 돈을 거둬들이는 속도가 늦어 버블이 생기면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출구전략의 속도가 빨라도 늦어도 모두 금융위기가 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재 필요한 처방은 어느 모델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까.

상황만 본다면 지금은 1994년과 2004년 모두 나름대로 비슷한 점이 있다. 여기에 최근의 상황은 두 가지 새로운 요소를 추가로 감안해야 한다. 우선 몇 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며 시장의 심리적 공포감이 극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1994년에는 미국이 빠른 속도로 돈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아시아와 남미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은 데 반해, 지금은 과거 당해본 경험 때문에 출구전략의 신호만 보고도 신흥국들이 흔들리는 양상이다. 이 말은 지금의 상황이 미국 출구전략의 속도에 상관없이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만으로도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 세계경제가 과거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계되어 신흥국 위기가 다시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방도 1994년이나 2004년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제금융 시장 불안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주요 신흥국들과의 국제적인 정책 공조를 통한 테이퍼링 속도와 금리 인상 시기를 조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직후 G20 정상회의에 신흥국들이 참여해 실효성 있는 위기 해결방안을 모색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일이 터진 후 해결책을 찾는 자리였다. 이번에는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함께 모여야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해관계국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반영한 단계적인 목표치를 정한 뒤 실행방안을 구체화함으로써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고준형/포스코경영연구소 상무·글로벌경제·정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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