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강렬하다. 제목만으로도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알려주는 하이 콘셉트 영화다. 스마트폰, 메신저, SNS, 인터넷 등 각종 네트워크를 통해 순식간에 정보가 확산되는 바로 지금, 꼭 나와야 할 소재의 영화다. '찌라시: 위험한 소문'은 누구나 그 존재는 알고 있지만, 그 실체의 뿌리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위험한 대상을 가지고 꼼꼼한 자료 조사를 통해 완성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는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고급 정보가 담긴 찌라시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현장감 있게 스토리에 녹여낸다.
우곤(김강우)은 가진 것은 없지만 사람 보는 안목과 집념 하나로 신인 여배우와 함께 차근차근 성공의 사다리를 밟아 올라가던 중이다. 그러나 여배우와 거물 정치인(안성기) 사이를 폭로하는 대형 스캔들이 터지고, 여배우는 자살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증권가 찌라시의 한 줄 내용 때문에 모든 꿈을 잃게 된 우곤은 직접 찌라시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 나선다. 우곤은 전직 기자 출신이지만 지금은 찌라시 유통업자로 살아가는 박 사장(정진영)과 불법 도청전문가인 백문(고창석)을 만나면서 정보가 생성되고, 제작, 유통, 소비되는 찌라시의 은밀한 세계를 알게 된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해결사 차성주(박성웅)까지 등장하여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우곤은 찌라시의 근원에 거의 접근한다. 결국은 자본을 움켜쥐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최상층 권력자에까지 다다르게 된 그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걸어야 한다.
지방대 졸업생과 동네 삼류 깡패의 로맨스를 그린 '내 깡패 같은 애인'으로 데뷔한 김광식 감독은 현실을 담아내는 리얼한 스토리와 캐릭터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 영화는 두 번째 작품으로, 실제로 존재하지만 실체를 알 길이 없는 증권가 찌라시와 연관된 범죄 세계를 활력적으로 그려낸다.
우리 모두가 짐작하는 음모 하나, 정치적으로 은폐해야 할 커다란 문제가 생기면 대형 연예인 스캔들이 터진다. 그 연관성이 자주 드러나서 이제는 식상하지만, 스타 연예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짜릿한 맛, 관음증적으로 파고들어 씹는 맛이 쏠쏠한 재미를 주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계속 궁금해한다. 음모 둘, 거대 기업이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휘두르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파보면 꼭 그분이 나오신다.
이제 이 세계는 거대한 관음증의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흔히들 스마트폰으로 연예인의 사생활 들여다보기가 하나의 유용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가 되었지만, 구경을 당하는 개인의 입장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고, 일명 엑스파일로 뿌려지는데, 믿거나 말거나 유명인들의 이불 속 상상은 재미있는 놀이가 되고 만다. 누군가를 철창 안에 가둬 놓고 구경하는 습관은 결국 각 개인에게로 향한다. 나의 정보가 마구잡이로 유출되고, 범죄를 추적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된 CCTV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 수시로 개인정보가 새고 일상은 기록되어 범죄 집단으로 하여금 다종다기한 범죄 행각을 창조적으로 발휘하게 만들어버렸다. 갖가지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보를 씹고 즐기는 사이, 그 정보들은 나의 목을 죄고 있는 현실이 된다.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에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을 쓴다. 그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 금지할 이유가 없게 되는 사회, 너무 많은 정보가 주어져 소극적으로 자기중심적이 되는 사회, 진실이 쓸데없는 정보의 바다에 수장되어 버리는 사회, 쓸데없는 것에 연연하는 문화를 갖게 된 사회를 두려워했다. 미래를 예측한 천재 헉슬리는 독재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자들과 합리주의자들이 사람들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흥미를 잃고 정신이 흩어지는지 고려하지 않았다고 쓴다. 그는 사람들이 쾌락에 의해 조종당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우리를 망하게 하리라고 생각했다. 80년이 흐른 후 그의 예언은 점점 더 정확해지고 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일상적으로 더더욱 통제당하며, 그리고 점점 더 멍청하고 자기중심적이 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봐야 한다.
'찌라시: 위험한 소문'은 정보와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꼭 나와줬으면 했던 영화다. 영화는 대한민국이 처한 우스꽝스러운 지옥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을 파헤치는 한 개인의 영웅담이며,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우는 힘없는 자의 용기를 목격하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솜씨, 대한민국을 골병들게 하는 바로 그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용기, 그리고 발로 뛰면서 현장 자료조사로 만들어진 찌라시 유통과정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하지만 다이내믹한 플롯 전개에 비해 캐릭터들은 밋밋하고, 거대악의 실체가 너무 쉽게 드러나서 빨리 김이 새어버린다. 선과 악의 구도가 선명해서 사건 묘사의 깊이가 세지 않고, 예상과 달리 액션과 볼거리가 약하다는 점도 영화의 약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은 위에서 지적한 단점들을 가리기에 충분하다. 영화에서 강도 높은 사회고발성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자살한 연예인의 비밀이라는 스토리를 통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감시 사회, 풍요롭지만 통제된 사회에서 받게 되는 무기력과 우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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