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위대한(?) 아베 총리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대인의 고독과 청춘의 방황을 그린 자신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이면 누구든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독서광이었던 빌 게이츠는 약혼식 의상에 개츠비의 패션을 적용했고, 저택도 개츠비의 집처럼 지었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인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이다.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의 꿈에 젖어 살다가 그 환상 속에서 기꺼이 파멸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개츠비는 흘러간 물레방아를 재력(돈)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믿은 황당한 인물이다. 속물적이고 부도덕한 여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한 어리석은 위인이다.

그렇지만 개츠비가 위대한 까닭은 그 사랑을 단 한 번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사랑에 실패했지만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은 이와 함께 1920년대 미국 사회를 지배한 계급적 모순과 부(富)에 대한 동경 그리고 신생 강대국의 물질주의가 가져온 열락과 허무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더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개츠비처럼 비도덕적인 대상을 무턱대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이다. 그의 일본 사랑은 어떤 외풍에도 흔들림이 없다. 어느 이웃도 의식하지 않는다. 사랑 그 자체가 중요할 뿐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일본을 위해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침략의 역사와 전쟁 범죄도 부인한다. 도쿄올림픽 유치를 위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한 거짓말도 불사했다. 독도와 댜오위다오(釣魚島) 그리고 쿠릴열도를 일본 땅이라고 막무가내로 우긴다.

과거 총리 재임 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이 통한으로 남았다더니 지난해 말 전범들이 합사된 음산한 이곳에 대한 참배를 전격 단행했다. 각국의 비판적인 여론과 이웃나라 국민의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아베는 평화헌법을 바꿔 일본을 재무장하는 게 '역사적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우경화 일방통행을 일삼던 그는 아예 "나를 군국주의자로 불러라"며 노골적인 본색을 드러냈다. 아베는 대동아공영권을 재연하기 위해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최강이자 세계 2위이던 경제 대국의 지위가 오랜 불황으로 흔들리면서 중국에 밀려나는 형국에다, 옛 식민지이던 한국마저 치고 올라오니 얼마나 초조하고 속이 상했을까. 사랑하는 일본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래서 '아베노믹스'라는 특별 처방을 내놓았고, '강한 일본'이라는 솔깃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한국에는 대놓고 막말을 하고 중국과도 맞짱을 뜨자면서 '아! 옛날이여'를 열창하고 있다. 아무리 무리한 열정이고 비뚤어진 사랑이라도 일본(국민)이 내숭을 접고 화답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군국주의자 아베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닮은 점이 있다. 패전으로 위축되어 있던 독일 국민이 히틀러의 등장에 열광했듯이, '잃어버린 20년'에 상심하고 있던 일본 국민이 아베 총리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독일 국민이 히틀러에게 그랬듯이 일본 국민도 아베의 주문(呪文)에 걸려들었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 응원단에 욱일승천기가 나부끼고, 인기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도 욱일승천기가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독일 국민이 '하일 히틀러'라며 총통 각하에게 존경을 표했듯이, 일본 국민도 '반자이(萬歲) 아베'라고 총리 각하에게 두 손을 쳐드는 일만 남은 듯하다. 젊은 세대는 가미카제 특공대라도 자원할 태세이다. 아베의 일본 사랑이 길어질 조짐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밀한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아베는 개츠비와 닮았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지독한 사랑을 지닌 점도 그렇다. 우리는 왜 아베처럼 위대한(?) 지도자가 없고, 함께하는 국민도 없는 것일까.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 것은, 개츠비처럼 인륜과 보편적인 가치를 상실한 애정 행각의 종착역은 파멸뿐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무도한 팽창 정책 또한 결국은 스스로의 패망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아베의 무모한 사랑이 바람 든 일본에 약(藥)이 될까, 독(毒)이 될까. 문제는 그 와중에 겪어야 할 우리의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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