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체육관의 절망

시인은 도시 곳곳에서 벤치에 앉은 노인을 본다. 그들은 힘겨운 눈빛으로 행인과 조잘대는 아이들, 날아가는 새를 본다. 여느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어서 모두 그냥 지나치지만, 시인은 절망을 만난다.

'… 당신은 벤치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조용히/ 이 행인들처럼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나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자크 프레베르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지난 17일 저녁, 경북 경주시 양남면 마우나오션리조트 내 체육관의 천장이 무너져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처음에는 며칠 동안 많은 눈이 내려 이를 견디지 못한 지붕이 무너져 일어난 천재(天災)인 듯했다. 그러나 어떤 사고든, 발생 뒤 원인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인재(人災)가 아닌 것이 없다.

이번 사고도 그러한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불합리와 비정상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그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재벌 대기업 소유 건물인데도 부실 공사에다 2009년 준공 뒤 한 번도 안전 점검을 하지 않았고(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했다), 출입구 외 비상구도 없었다. 계속된 눈으로 불과 일주일 전에 울산에서 같은 공법의 건물 몇 채가 무너져 3명이 사망했다. 눈 때문에 위험하다며 일반 손님에게는 예약 취소까지 요청한 리조트 측은 정작 위험한 곳에서 1천 명이 넘는 학생이 참여하는 행사장의 안전에는 무관심했다. 또 기획사의 사전 답사는 위험을 이유로 말리면서 학생회의 제설 작업 요구는 묵살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구태여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이런 모습에서 절망을 본다. 이 수많은 문제점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챙겼다면, 어이없이 10명의 목숨 빼앗고 그 가족을 절망으로 떠민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 탓에 많은 것을 빼앗겨 무력한 노인이 아닌데도 그들은 이제 더는 아이처럼 놀 수도, 행인처럼 지나갈 수도 없다. 후진국'형'(型)이 아니라 후진국이어서 일어나는 참사 앞에서 미안하다고 할 염치도 없다. 벤치 위의 절망이 아니라 체육관의 절망이 돼버린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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