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동물들의 마음

꽤 오래전에 읽었던 글 중에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 속을 맴도는 동물 이야기가 있다. 바로 미국 커럼포 골짜기에 살던 '로보'라는 이름의 늑대에 관한 이야기다. 지혜로운 두뇌로 사람들이 쳐놓은 덫을 피해 다니며 늑대 무리를 통솔하던 로보는 일명 '늑대왕'으로 불리며 그 지역의 소들과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사람들은 이 녀석을 포획하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웠다. 로보는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지만 결국 은빛 털을 뽐내는 녀석의 배우자, 블랑카를 이용해 그를 유인하는 작전에 걸려 잡히고 말았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은 채 사람에게 잡힌 로보는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이 이야기는 늑대왕 로보의 남다른 지혜로움과 높은 자긍심, 그리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낄 수도 있지만 비극적인 결말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언제 다시 봐도 마음 한쪽이 찡해오는 슬픈 이야기이다.

여기서 로보를 잡았던 사람은 일명 '시튼 동물기'로 유명한 미국의 박물학자 어니스트 시튼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여느 동화와 비슷한 한 편의 픽션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 다시 접했을 땐 이것이 소설이 아닌 시튼이 직접 자신의 경험담을 소설 형식으로 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시튼은 이 이야기를 필두로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다양한 동물들의 삶을 이야기로 담아냈는데, 이 이야기들이 인간과 마주한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지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봐도 슬픈 결말이 대다수다. 아마도 시튼은 정말 동물들을 사랑했기에, 사람들이 단순히 '사람이 아닌, 그저 동물'이라고 규정하기보다는 그들의 모습과 삶을 바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다소 잔인한 장면이나 슬픈 결말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것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나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 무심코 넘겨버릴 수 있는 동물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또 동물들의 아픔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동물들은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의 경우에도 처음엔 잘 몰랐지만 함께 지낸 시간이 늘어나니 녀석들의 얼굴만 봐도 마음이 담긴 표정이 보인다. 함께 뛰어 놀 때는 얼굴 가득 즐거움이 가득하고 자다가 부스스 일어났을 땐 귀찮음과 졸림이 얼굴 한 가득 담겨 있다. 나갔다가 돌아올 땐 반가움이 가득 담긴 기쁜 표정으로 마중을 나서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나 낯선 이가 방문했을 때엔 온 얼굴에 두려움과 무서움이 가득 담겨 있다. 이렇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물들 역시 즐거움과 기쁨, 반가움, 귀찮음, 화남 등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 감정들이 꾸밈이 없고 솔직해서 사람이 표출한 감정에 비해 복잡하지가 않기에, 바로 알아보기도 쉽다.

예부터 역지사지란 말이 있다. 이 말에 비춰서 동물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동물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평소에 내가 바라보던 세상과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늑대왕 로보처럼, 그리고 우리 집 체셔와 앨리샤처럼 그들도 사랑하는 대상이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따라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아픔도 느낀다. 아쉽게도 현실에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동물들만큼이나 그에 반하는, 로보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슬픈 이야기가 많이 있다. 내가 그 모두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책임져 줄 수는 없지만-그러기엔 내가 너무나 부족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생존권에는 피해가 가지 않게, 상처받지 않게 배려를 해 주고 그들의 삶을 존중해 줄 수 있다면 좀 더 아픔이 없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수많은 사람과 동물들의 생명을 위해서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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