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수필-사람의 향기

마흔의 막바지에서 바라본 삶은 돌아갈 길은 너무 멀고 마음의 발은 무겁기만 하며 남은 길은 가깝게 보였다. 다 타버려도 좋은, 다 불살라져도 좋을 오늘을 오늘로 알고 마지막 순간 더 밝은 촛불처럼 살아가자. 열정 없이 늙어간다는 건 무의식의 삶보다 슬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해 4월 자연적인 생명이 제한된다는 병원진단을 받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년을 더 살겠다고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아등바등 삶을 지탱하기보다 1년을 살아도 웃으며 활기찬 삶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한순간 에너지가 고갈되더라도 하루하루 불꽃 같은 삶으로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삶의 향기를 만들어 보자. 앓을 만큼 앓아야 낫는 감기처럼 나 스스로 느끼고 체험함으로써 나만의 냄새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소중한 것을 소중한 줄 몰랐고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순서를 정하지 못한 것이 많아 시행착오를 일으키며 넘어지고 부딪히기를 반복하였다.

말랑말랑 부드럽고 가느다란 촉수를 가지고 세상구경을 하려다 뭔가에 닿으면 재빨리 움츠려 집 속으로 몸을 숨기는 달팽이처럼, 숨을 곳이 있다는 것은 살아갈 곳이 있다는 뜻이고 나갈 곳도, 뻗어갈 곳도 있다는 뜻이겠지. 세상과 부딪혀 나가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몸을 숨겨 새로운 용기와 지혜를 재충전하여 세상에 나갈 수 있는 나만의 집, 나를 숨겨주고 감싸줄 수 있는 달팽이의 집을 만들어 보자.

주말에는 국립과학관에도 가고 주일에는 비슬산에 올라보자. 그 집에는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이 만든 그림과 향기가 있겠지. 그 사람의 냄새를 맡고 알 수 있는 냄새는 화학적 반응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면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향기일 것이다.

허이주(대구 달서구 성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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