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농업, FTA 파고를 넘자] <7>우수 산지조직체 저변 확대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伊 과일 협동조합 '아포푸르트' 전국 10여 곳 산지서 매일 출하

아포푸르트 소속 한 사과 농가에서 사과를 수확해 곧바로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포푸르트 제공
아포푸르트 소속 한 사과 농가에서 사과를 수확해 곧바로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포푸르트 제공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유기농산물 산지조직체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유기농산물 산지조직체 '노틸러스'의 전자상거래는 '에코코펜'(EKOkopen)이라는 전문 유통 업체가 맡는다. 노틸러스 제공
이탈리아 최대 과일 판매 협동조합
이탈리아 최대 과일 판매 협동조합 '아포푸르트'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365일 다양한 과일 품목을 생산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저변이 '산지조직체'다. 농산물 품목별 산지 생산자들이 뭉친 조직을 가리킨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된 이후 농산물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정부는 지난 10여 년간 산지조직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후 성공한 산지조직체와 실패한 산지조직체가 나타났다. 규모를 키우다 보니 조직력이 와해돼 오히려 경쟁력을 잃는 경우가 많았고, 큰 규모와 조직력을 모두 갖추더라도 농산물 생산과 유통, 마케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가 쉽지 않았다.

FTA 시대에 어느 하나라도 결점이 있는 산지조직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수 산지조직체의 조건을 알아봤다.

◆기본에 충실하기, 일본 이바라키현 VFS

산지조직체는 물량규모화와 품질균일화, 이를 통해 얻는 시장교섭력을 모두 충족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소규모'고령농가도 참여할 수 있다면 농촌의 지속가능성도 얻을 수 있다.

일본 이바라키현의 VFS(Vegetable Fruit Station)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바라키현은 현재 농업 생산액이 4천161억엔, 우리 돈으로 4조3천억원에 달하는 일본 3위의 농업 생산지역이다. 도쿄와 50~100㎞ 거리에 있는 채소 산지가 중심이다. 이 지역은 1990년대 이후 농가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또 잇따라 생겨난 대형마트들은 대도시 인근 산지 농가들과 일일이 접촉해야 하는 농산물 패키지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1992년 일본 전국 농민회 이바라키현 본부가 중심이 된 VFS가 구성됐다.

VFS는 산지 농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출하처에 대한 코디네이터 업무를 맡았다. 특히 생산자 및 출하처별로 맞춤형 마케팅을 펼쳤다. 생산자별로 보면 소규모'고령농가에 대해서는 품질관리와 상품화에 신경 썼고, 대규모 농가에 대해서는 물량과 안정적인 수익 확보에 힘썼다. 출하처별로 보면 엄격한 기준을 가진 대형마트에 대해서는 다른 출하처보다 포장 등 상품균일화에 조금 더 신경 썼다. 한정된 사업 여력을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에 충실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 이탈리아 아포푸르트

차별화된 전문성과 마케팅 능력을 갖춰 경쟁력을 높인 산지조직체도 있다. 아포푸르트(Apofruit)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과일 판매 협동조합이다. 1960년대부터 형성된 이탈리아 폴를리 체세나 지역 협동조합들을 중심으로 1991년에 결성한 전국적인 협동조합이다. 연 2억유로, 우리 돈으로 3천억원 규모의 과일을 유통한다.

이들의 첫 번째 전략은 처음부터 연중 과일 생산 능력을 갖춰 확보한 시장교섭력이다. 산지조직체 결성 초기부터 이탈리아 북부에서 최남단까지 주요 과일 산지에 있는 생산자들이 모였다. 이들이 보유한 전국의 '패킹센터'(우리나라의 '산지유통센터') 10여 곳에서 다양한 품목의 과일이 하루도 쉬지 않고 출하된다.

두 번째 전략은 다양한 혁신의 체계적인 추진이다. 다양한 과일 품목을 갖췄음에도 세계 시장 변화에 발맞춰 신품종을 도입하고, 유기농 상품 라인도 구축했다.

세 번째 전략은 사회적 책임 마케팅이다. 유기농산물 전문 브랜드 '카노바'로 틈새 판매 수익을 올리면서 협동조합의 환경보전 이미지도 높인다. 또 학교에 과일을 무상 공급하고,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견학'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농업과 농산물,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사회적 의미 부여 활동도 펼친다. 모두 아포푸르트의 잠재적인 소비자 확보로 이어진다.

◆소비자 신뢰가 최우선, 네덜란드 노틸러스

안전한 먹을거리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농산물 판매는 곧 신뢰를 판매하는 일이 됐다. 특히 친환경'유기농 농산물 수요가 급증하면서 산지조직체의 꾸준한 신뢰 관리가 요구된다.

1989년 결성된 노틸러스협동조합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유기농산물 산지조직체다. 네덜란드에서 100% 유기농산물만 취급하는 유일한 산지조직체다. 연 5천만유로, 우리 돈으로 700억원 규모의 유기농산물을 유통한다.

노틸러스의 특징은 중간 유통 단계를 하나 더 뒀다는 것이다. 복잡한 유통 단계는 줄여야 하지만 예외도 있다. 노틸러스는 자신들이 취급하는 품목이 유기농산물인 만큼 소비자 신뢰 확보를 위해 각 전문 중간 유통조직에 일종의 신뢰 마케팅을 맡겼다. 산지조직체 스스로 할 수 없는 전문 업무가 있다면 꼭 필요한 부분은 외부에 맡겨 성공한 사례다.

◆우수 산지조직체의 성공 조건은?

농촌진흥청은 우수 산지조직체의 성공 조건 4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철저한 상품화다. 소비지 시장은 일정한 품질의 상품을 연중 공급해 줄 수 있는 산지조직체를 선호한다. 또 세분화된 등급 설정과 공동선별을 통한 품질균일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수확'저장'출하까지 모든 단계에 걸친 품질 관리가 필요하고, 생산 매뉴얼 확보와 생산자에 대한 주기적인 교육도 요구된다.

두 번째는 안정적인 원료(농산물) 조달이다. 농산물 유통의 핵심은 정량'정가'정질'정시다. 유통 환경의 변화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꼭 지켜야 하는 기본 조건들이다. 이를 통해 산지조직체는 안정적인 출하처를 확보하고, 일정한 출하 가격으로 안정된 소득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정적인 원료 조달의 조건은 계획 생산이다. ▷생산 시설의 현대화 ▷산지조직체의 다양한 지원 사업 및 출자금 조성 노력 ▷원활한 시장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얼마나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곧 경쟁력이다.

세 번째는 맞춤형 마케팅이다. 전통적인 농산물 유통 구조에서 시장교섭력 확보는 '누가 물량을 더 많이 확보하느냐'만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소비지 시장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고, 수입 농산물의 물량 및 저가 공세가 이어지며 전통적인 전략만으로는 생존이 힘들어졌다.

따라서 산지조직체는 ▷출하처가 요구하는 선별 기준과 포장재 규격 등을 충족하고 ▷재배농가 계약부터 물류와 판매는 물론 고객 관리까지 아우르는 통합 업무 시스템을 갖추고 ▷시장 변화에 따라 분산 출하와 판로 다양화 전략을 구사하며 수급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네 번째는 성공적인 조직화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10여 년간 만들어진 국내 산지조직체 중 규모가 커지면서 오히려 조직력이 와해돼 경쟁력이 떨어진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같은 품목 생산자들끼리 모인다고 같은 마음과 목표를 공유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지조직체의 성공적인 조직화 방안은 ▷조직 관리 업무에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것 ▷생산자들의 사적 관계를 배제하고 공정성을 바탕으로 조직을 관리할 것 ▷전체 구성원이 얻으려는 공동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할 것 등이다. 사회 속 여느 조직의 지속 조건과 같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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