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서점가 부는 '정도전 바람'

사료 속 잠자던 영웅의 부활, 민본주의 날다

서점가에 정도전 바람이 거세다. 정도전의 혁명과 민본주의 정책을 다룬 인문서와 소설이 쏟아지고, 이전에 나온 정도전 관련 책도 다시 출간되고 있다.

지난달 4일부터 방영 중인 KBS1 주말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영향이 크다. 첫 회 시청률 11.6%(닐슨코리아)를 기록한 이 드라마는 최근 14회(2월 16일) 시청률 15.2%를 기록하며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드라마 속 정도전(조재현 분)의 모습은 요즘 표현으로 '백성밖에 모르는 바보'다. 백성을 최우선으로 삼은 민본주의 정책가다. 이성계를 만나 조선 개국을 돕고, 자신의 철학을 담아 국가 시스템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인간미도 물씬 발산한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만든 책을 한번 살펴보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제연구소장은 드라마 정도전 제작진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들을 엮어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담)를 펴냈다. 저자는 "정도전의 삶은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최근 재활용 폐자원 매입세액 공제율을 50% 낮춰 폐지를 줍는 빈민층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고 나선 대한민국 사회와 소작농들에게 8~9할의 소출을 걷은 고려 사회가 닮았다. 그래서 정도전 같은 인물이 나와 판을 엎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명의 지식인이 내놓은 전략에 고려가 무너졌다는 것은 그만큼 체제 내부에 문제가 많았다는 방증"이라며 "사회 문제는 사회 내부에서 순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설은 장르의 특성상 혁명이라는 소재의 긴장감을 빌려 정도전의 민본주의 정책을 재조명한다. 조선시대 때 혁명을 꿈꾼 허균을 다룬 '허균 최후의 19일'을 쓴 김탁환 소설가는 비슷한 콘셉트로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 1, 2'(민음사)를 펴냈다. 이 책은 이성계가 해주에서 낙마한 순간부터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암살당하는 순간까지, 고려라는 불꽃이 꺼지고 조선이라는 동이 튼 18일을 담았다. 여기서 18일은 정도전이 내놓은 여러 정책들이 어떻게 민본주의 정책으로 갔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정도전 재조명의 물꼬를 튼 원조도 다시 돌아왔다. 17년 전 출간됐다가 절판된 '정도전을 위한 변명'(휴머니스트)이 몇몇 오류를 수정해 복간됐다. 당시 '정도전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책의 저자는 조유식 인터넷 서점 알라딘 대표다. 이 책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료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정도전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정도전 이전에도 이후에도 정도전 같은 문제적 인물은 우리 역사에 없었다"며 "이 책이 출간된 17년 전보다 정도전에 대한 평가가 더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