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입사 동기의 아내는 '요리 왕'이다. 전라도 출신인 그녀는 한식은 물론 각종 빵까지 오븐으로 직접 구워낼 만큼 홈 베이킹(Home baking)에 능하다. 신문사 선후배 사이에서도 "역시 전라도 여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침마다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자타공인 '빵순이'인 기자는 그녀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꼭 한번 내 손으로 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만약 여러분 집 주방에 혼수로 들인 오븐이 몇 년째 방치돼 있다면 지금이 사용할 기회다. 집에 오븐이 없어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프라이팬만 있어도 거뜬히 과자를 만들 수 있다. 예르 제과제빵 직업전문학교의 김형곤(54) 기능장의 도움을 받아 직접 빵과 쿠키를 만들어봤다.
◆ 두근두근 빵 만들기
19일 오후 대구 수성구 시지동의 예르 제과제빵 직업전문학교. 3층 교육실로 들어가자 빵 냄새가 솔솔 났다. 빵 냄새 때문인지 괜히 마음도 설레다. 내가 만든 빵에서도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가 곧 날 것 같다는 기대로 부풀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기본부터 알고 시작해야 한다. 빵을 먹는 데 전문성(?)이 있어도 만드는 데는 무지한 기자는 "홈 베이킹을 할 때 꼭 갖춰야 할 도구가 뭐냐"고 김 기능장에게 물었다.
"작은 저울은 필수에요. 요즘 오븐을 갖춘 가정은 많은데 정작 저울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1g 단위로 계량할 수 있는 디지털 저울을 추천합니다. 접시 형태의 용수철 저울은 오차 범위가 큽니다. 그리고 둥근 형태의 그릇, 주걱만 있으면 끝입니다."
본격적인 베이킹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도전할 빵은 '흑설탕 건포도 빵'. 이름에서부터 달달함이 느껴졌다. 여기서 잠깐. 똑같이 밀가루로 만드는 건데 빵과 쿠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김 기능장은 "빵은 발효 과정을 거치고, 쿠키는 숙성만 하면 된다. 그래서 쿠키보다 빵을 만드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맛있는 빵을 만들려면 최소 3, 4시간은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 빵, 기다릴수록 맛있어진다
제빵의 시작은 정확한 계량이다. 디지털 저울 위에 그릇의 무게를 뺀 뒤 제빵용 밀가루인 강력분을 250g 넣었다. 밀가루 1g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계량하는 김 기능장의 세심함에 감동했다. 나는 제과제빵 경력만 40년인 '베테랑' 김 기능장이 눈을 감고 '감'으로 계량할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재료가 얼마만큼 들어갔는지 알아야 나중에 잘못 넣어도 수정이 가능해요."
두 번째 단계는 빵을 빠르게 발효시키는 첨가물인 이스트 20g을 투척하는 것. 이스트에는 생 이스트와 건조 이스트가 있다. 건조 이스트에는 효모가 많아 발효 시간을 단축시킨다. 여기서 설탕을 이스트와 직접 섞으면 안 된다. 이스트는 '살아있는 세포'라서 이 속에 밀도가 높은 설탕이 섞이게 되면 발효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무조건 한꺼번에 섞으려고 했던 기자의 손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가장 신나는 순서는 반죽이다. 밀가루와 이스트, 달걀과 흑설탕, 소금과 물을 잘 섞은 뒤 반죽을 시작했다. 반죽하고 오븐에 구우면 끝일 줄 알았는데, 빵은 '기다림의 음식'이었다. 제대로 된 빵을 먹으려면 2차례 발효를 거쳐야 한다. 먼저 둥글게 만든 반죽을 비닐로 덮어 발효실에 넣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40분. 처음보다 몸집을 두 배로 부풀린 반죽에 달걀흰자를 넣고 다시 두 개로 분리해 20분간 다시 발효했다. 빵과 쿠키의 차이가 '발효'에 있다는 김 기능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발효 방법에 따라 전통 빵과 현대 빵이 나눠진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발효시키는 첨가물이 없어서 항상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바쁘니까 빨리 발효시킬 수 있는 첨가물이 많이 나와서 제빵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켰죠. 첨가물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스트를 많이 넣으면 이 속에 산화제가 많아 유기산이 부족해집니다. 옛날 빵이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습도 투박하지만 영양소 균형은 더 좋습니다."
◆ 맛있는 빵과 쿠키, 직장 동료들도 대만족
빵이 발효되는 동안 두 번째 메뉴인 '모자이크 쿠키'를 만들기로 했다. 박력분과 버터, 달걀, 설탕과 소금, 베이킹파우더와 코코아가 주재료다. 빵과 비교하면 쿠키는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는 편이다. 버터를 녹일 때 열을 바로 가하지 말고, 뜨거운 물에 중탕하는 점만 기억하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
레시피를 보다가 달달한 쿠키에 '소금'도 2g 들어간다는 것을 눈치 챘다. 김 기능장은 "소금은 단맛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소금이 적절한 비율로 들어가면 설탕만 넣었을 때보다 단맛이 더 강해진다"고 곧바로 설명했다.
"쿠키, 할 만하네." 자만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서 위기를 맞닥뜨렸다. 1㎝ 두께로 일정하게 평평한 반죽을 만드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밀대에 힘이 제멋대로 들어가 울퉁불퉁한 반죽이 됐다. 김 기능장의 반죽은 네모 반듯 평평했지만, 기자의 손을 거친 반죽은 힘 조절이 안 돼 울퉁불퉁 모가 났다. "반죽 끝 부분을 각지게 만들려면 비닐 팩 안에 넣어서 반죽을 네모 모양으로 만든 뒤 밀대로 밀면 돼요. 만약에 집에 밀대가 없으면 병으로 밀면 됩니다." 김 기능장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날은 시간에 쫓겨 반죽이 된 쿠키를 곧바로 잘랐지만, 쿠키 반죽을 냉동실에서 20, 30분간 얼린 뒤 자르면 훨씬 모양이 깔끔해진다. 또 쿠키가 오븐에서 빨리 익기 원한다면 0.5㎜ 정도로 얇게 자르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만든 빵과 쿠키를 들고 회사로 돌아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시식을 했다. "직접 만든 것"이라고 생색을 내며 회사에 뿌렸다. "오~ 맛있는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물론이다. 전문가가 만든 빵이니까. 기자가 한 일이 있다면 2시간 30분간 서서 밀가루 반죽을 하고 전문가의 재빠른 손놀림에 감탄한 것뿐이니.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다음 번 주제는 초밥으로 하지 그래? 초밥도 먹게. 하하." 그리고 깨달았다. 빵은 만드는 것보다 먹는 행복이 더 크다는 사실을. '제빵왕 김탁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음식 만들기 체험 기사는 당분간 없을 것 같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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