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갖추고 있는 재난대응 매뉴얼이 실제 재난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매뉴얼이 존재하고, 그에 맞춰 훈련도 실시하지만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 상황이 거듭된다.
◆교통 통제 안 돼 중장비 동원 늦어
"크레인은 언제 옵니까?" "크레인, 어딨어? 빨리 확인해봐." 이달 18일 오전 1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처참하게 무너진 천장과 2m 넘게 쌓인 눈을 파내던 소방관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건물 붕괴 현장 안에 있는 중장비라곤 소형 굴착기 한 대가 전부. 켜켜이 쌓인 샌드위치 패널을 들어 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입구에 크레인이 한 대 있어요!" "아니, 왜 안 올라오는 거야?"
한참이 지난 후에야 3t 크레인 한 대가 체육관 앞에 들어섰다. 크레인에 샌드위치 패널을 걸어 건물 밖으로 들어내자 구조 작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사고가 난 지 4시간이 지난 시점. 결국 찾아낸 건 차가운 희생자의 시신뿐이었다. 기울어진 건물 벽체를 지지해 줄 100t 대형 크레인은 그로부터 1시간 30분이 더 지나서야 도착했다.
중장비 동원이 늦어진 것은 현장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진입로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차량은 소방차 104대와 구급차 58대, 각종 중장비 25대 등 190여 대가 넘었고 동원된 인원만 1천575명이나 됐다. 여기에 시군 공무원들과 언론사 취재 차량까지 밀려들어 아수라장이었다. 현장 접근을 통제하고 교통정리를 통해 효율적인 구조 작업을 해야 하는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구조대 한 관계자는 "구조과정에서 군'경찰 등 너무 많은 구조인력이 동원돼 중간에 일부가 철수하기도 했다"며 "차량이 너무 몰리고 혼잡한 상황이라 정작 중요한 중장비 접근이 다소 지연됐다. 적은 인력이라도 전문성 있는 구조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한국형 대응 매뉴얼 만들어야
부상 정도에 따른 체계적인 구분 없이 병원으로 이송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보건복지부의 재난대응 체계에 따르면 대량 환자 발생 시 현장에 응급의료소를 설치하고 부상 정도에 따라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그러나 응급의료소는 사고 발생 2시간 뒤인 밤 11시 40분쯤 설치됐고, 그 사이 전체 부상자의 절반이 넘는 70명이 무작위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때문에 전체 사상자 수 집계가 마지막까지 달라지는 혼선을 빚었다.
허술한 재난 예방 체계도안번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다. 건축물 등 시설물 재난 사고 대응 매뉴얼에는 재난 예방을 위해 중점관리시설과 재난위험시설 등에 대해 안전 진단과 정기점검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봄'가을과 동절기에 지자체나 소유주의 책임하에 안전 점검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체육관의 면적은 1천205㎡로 지자체의 안전 점검 대상이 아니었다. 리조트 측은 수차례 자체적으로 안전점검을 했다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예방대책이 유명무실했던 것이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국형 매뉴얼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팀장=김수용 사회2부장
취재=최경철·장성현·이채수·박승혁·신동우 기자
사진=성일권·정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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