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오이산호 기름 유출 사건은 유조선이 지나치게 과속 운행하여 송유관을 들이받아 벌어진 사건이었다. 안전한 접안을 위해 배에 오른 도선사가 제1수칙인 안전운항 매뉴얼을 무시했던 과실인지, 아니면 그렇게 빠른 속도로 갈 수밖에 없었던 다른 요인이 있었는지는 최종 수사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도선사가 기본 소임을 제대로 다하지 않았음을 선박 운항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동해안 지역에 눈이 계속 내려 비닐하우스가 무너져내리고, 11일엔 울산의 자동차 부품 공장 지붕이 내려앉아 인명이 희생되었음에도 아무도 지붕에 쌓인 눈, 그것도 물기를 머금은 '습설'(濕雪)의 무서움을 경고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신입생 환영회 행사를 치르다가 패널로 지은 경량 철골 건물이 무너져 꽃다운 나이의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창고나 축사 시공에 적절한 공법과 자재로 지어진 건물 내 행사에 대학 보직교수와 직원들이 행사에 같이 갔다고 하지만, 그들이 안전 관련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황당한 것은 리조트 직원들의 안전의식 결여 혹은 무감각함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약 50㎝의 눈이 쌓였을 경우 1㎡ 눈 무게는 50㎏이지만, 습기를 품으면 최대 3배인 150㎏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리조트 강당 지붕에는 최대 180t의 무게가 가해졌을 것이고 1㎡당 150㎏을 넘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시공 과정에서 설계 조건 및 규격에 맞는 철근을 썼는지도 반드시 수사해야만 할 것이다.
그 무서운 하중이 지속되고 있던 상황에서 600명 이상의 체온, 조명이 뿜는 열기의 난무, 대용량 스피커의 무자비한 비트와 굉음이 유발한 진동까지 합쳐져서 일주일 내내 짓눌려 있던 지붕은 13초 만에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중간 조사를 보면 리조트 측에선 일주일 이상 지속된 눈 속에서 제설작업 없이 영업을 해왔다고 하니 리조트 운영진은 응분의 책임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안전불감증과 행정당국의 안전점검 결여는 이번에 바로잡아야 한다. 사고 건물은 2009년 체육관으로 사용 승인을 받았으나 좁은 실내 면적 등을 이유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점검 대상에서는 벗어나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법적 미비는 누구의 책임인가?
사용 승인은 받았으나 안전 단속 법망에서는 제외되어 있는 건물들이 대한민국에 몇 채나 되는 것인지 행정당국은 조사하고 그 법적 사각지대를 도려내야 할 것이다. 소규모 체육시설과 공연장 등에 대한 안전관리 기본법을 재정비하고 엄격하게 집행해야 할 것이다.
리조트 측에서 "외부기관에 의뢰한 점검은 없었지만, 관리팀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건물의 안전과 소방 등에 관한 내부 점검을 벌여왔다"고 해명을 했는데 기가 찰 노릇이다. 건물의 안전이 아니라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와 우면산 참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고쳤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버린 큰 고질이 하나 있다. 매사에 안전 매뉴얼을 제대로 만들고, 그것을 보급하고, 모두가 입 꾹 다물고 지켜나가는 것을 경시하는 풍토이다. 편법으로 안전 매뉴얼을 무시하며 장사하는 사람이 더 큰 이득을 보는 사회는 곤란하다. 건물구조 안전점검은 물론이고 건물 사용 관련 안전 매뉴얼을 재정비해야 한다. 위반할 경우 막중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한다. 또, 기후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건물 안전 하중 관련 기준은 10여 년 전에 정해진 이후 전혀 수정된 바가 없다니 불안하다.
마지막으로, 시설 사용자들도 싸고 편리함만 따질 것이 아니라, 안전제일(Safety First) 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김성수 인제대 인문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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