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가와 작업실] 2층 좁은 다락방서 꿈 키우는 '늘 푸른 소나무'…장이규

다락방이 주는 어감은 정겹다. 지붕과 천장 사이 공간을 활용해 만든 다락방이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다락방에 얽힌 추억 한두 개쯤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다락방은 특히 보관이 용이한 음식들이 많이 있었던 까닭에 아이들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했다. 또 다락방은 훌륭한 놀이공간이었다. 숨바꼭질을 하면 몸을 숨기는 단골 장소였다. 부모님 눈을 피해 만화책 등을 보며 낮잠을 즐기던 아이들 꿈의 저장소이기도 했다. 이렇듯 재미있고 맛있는 것들이 많았던 다락방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추억의 공간으로 남아 있어 지금도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서양화가 장이규의 작업실은 이런 다락방을 연상시킨다. 도로변에 붙어 있는 쪽문을 열면 2층으로 연결되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계단 끝이 바로 작업실이다. 계단과 작업실을 구분하는 문도 없어 영락없이 다락방 같은 모습이다.

다락방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크기도 한 뼘에 쏙 들어올 만큼 아담하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자그마한 창문 아래에 작은 소파가 놓여 있고 한쪽에는 작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마치 다락방 한쪽에 물건을 쌓아 둔 것 같다. 장 작가는 작품을 쌓아 둔 바로 옆에서 작업을 한다.

장 작가는 2009년 9월 계명대 교수로 임용된 뒤 두류동에서 학교 인근인 대명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교수가 되면서 그의 작업 시간은 현저하게 줄었다. 그래서 강의가 없는 틈틈이 작업실에 들러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업실을 이전했다.

교수가 되어 소위 말하는 '신분 상승'이 이루어졌지만 작업실은 오히려 절반 이상 작아졌다. 장 작가는 처음에는 답답한 느낌이 들었지만 작은 공간은 큰 공간이 갖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어 지금은 만족스럽다고 했다. 좁을수록 공간의 친밀도가 높아진다. 이는 혼자 작업하는 작가에게 집중도를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이 때문에 장 작가는 교수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작업실을 옮길 생각이 전혀 없다. 장 작가는 "두류동 작업실은 제법 규모가 커서 작업 공간과 휴식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대명동 작업실이 비좁아 성급하게 옮겼나 생각도 했지만 지내 보니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소나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래 주특기는 인물화였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인물화로 경북미술대전에서 입상을 했다. 이후 수차례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도 모두 인물화였다. 인물화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장 작가는 1989년 서울 서림화랑과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교편(심인중)을 놓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던 중 서울 모화랑에서 풍경화가 있으면 몇 점 달라는 요청을 받고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풍경화를 그리면서 녹색에 빠져들었다. 특히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소나무의 매력에 심취했다. 장 작가는 "소나무 냄새가 좋다. 중후하고 기품 있는 모습도 나를 사로잡는 소나무의 매력"이라고 소나무 예찬가를 늘어놓았다.

그의 작품은 마치 앉아서 소나무를 바라본 것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 '앙시투시'라고 한다. '앙시투시'로 그림을 그리면 사물들이 중첩되어 보여 원근감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 장 작가의 작품 속 소나무 색깔은 자연적인 것보다 짙고 강하다. 이는 소나무 그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다. 소나무가 있는 풍경은 고요하다. 나쁘게 표현하면 경쾌한 맛이 없어 진부해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채도 대비를 하다 보니 소나무 색깔이 짙어졌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연의 질서를 담되 얽매이지는 말라고 강조한다. 대상을 자신만의 것으로 해석하는 창조성은 작가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그의 소나무가 짙은 색감을 갖고 있는 것도 소나무를 담되 소나무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작가 정신의 발로로 해석된다.

소나무는 장 작가 인생에 새로운 방점을 찍은 그림 주제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이어서 소나무를 그린 뒤 마케팅 차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소나무는 장 작가를 소위 말하는 인기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작품은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많다. 서울에서 가진 전시회에서는 하루 만에 작품을 전부 판매한 적도 있다.

잘나가는 작가가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직업까지 갖게 됐다. 경제적 안정은 작가에게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면서 소신을 갖고 보다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약이다. 하지만 자칫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작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이에 따라 장 작가는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을 가장 경계한다. 좁은 작업실을 떠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는 편안함과 안일함에 빠지지 않으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장 작가는 화가 인생 40여 년 동안 작업실을 세 번 옮겼다. 봉덕동→가창→두류동→대명동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그가 머물렀던 곳이다. 긴 작가 인생을 고려해 보면 작업실 이사가 매우 적은 편이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옮기지 않는 것은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소나무를 닮았다.

게다가 장 작가의 작업실은 위치적으로 보면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다. 차량 통행이 잦은 삼각로터리 도로변에 있는데다 커다란 세차장 옆 김밥집 2층에 둥지를 틀고 있다. 작가의 작업실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장 작가는 좁은 작업실에서 늘 푸른 소나무의 꿈을 변함없이 추구하고 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가식적이지 않고 소박한 장 작가의 작업실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보다 굽은 소나무가 자라는 척박한 땅에 비유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술혼을 지키는 아우라를 갖고 있다.

◆장이규는

계명대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롯해 대구미술대전'단원미술대전'무등미술대전'금강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계명대 미술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트스타 100인전, 한국구상대전, 아트대구 2009, 대한민국 국제아트페어, 한국현대미술 100인 초대전, 21세기를 열어가는 현대작가전, 정예작가 50인 특별초대전, 한국구상미술 대표작가전 등에 작품을 출품했다. 또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 개인전을 30여 차례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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