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숨어있던 항일 투사 259명 찾았다

향토사학자 10년 노력 결실…일본 의병학살 자료 분석

정재상 경남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이 항일투사 259명에 대한 문건을 찾아,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의병장 41명에 대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 서훈 신청한 항일의병장 41인의 자료와 경북의 권문선 의병장 자료.
정재상 경남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이 항일투사 259명에 대한 문건을 찾아,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의병장 41명에 대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 서훈 신청한 항일의병장 41인의 자료와 경북의 권문선 의병장 자료.

권문선(權文善'경북 경주군 산내면 감존) 의병장은 1905년 을사늑약 후 경북 경주군 일대에서 의병 50여 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중 1908년 5월 28일 경주군 감존(甘存)에서 격전을 벌이다 체포돼 총살됐다.

#박인시(朴仁是'경북 고령군 명곡) 의병장은 1907년부터 경북 고령과 경남 거창 일대에서 의병 150여 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1908년 8월 26일 의병 20여 명과 함께 경북 고령군 명곡(明谷)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체포된 뒤 총살됐다.

3'1절을 앞두고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망언과 망동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 한 향토사학자가 일제에 의해 학살당한 항일투사 259명에 대한 문건을 찾아,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의병장 41명에 대해 정부에 서훈 신청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에 찾은 문건은 구한말 을사늑약 후인 1907~1909년 국내에서 50~400여 명의 의병대를 조직해 무장투쟁을 벌이다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 때 체포돼 총살되거나 칼에 찔려 순국한 항일의병장 41명과 무명 항일투사 218명에 대한 문건이다.

정재상 경남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은 일제가 작성한 '진중일지'(토지주택박물관 소장)와 '폭도에 관한 편책'(국가기록원), 그리고 '조선 폭도토벌지' 등에서 서훈 받지 못한 항일의병장 41명과 무명 항일투사 218명의 학살문건을 찾아 이달 4일 의병장 41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서훈 신청을 했다.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월별로 경무국에 보고한 의병탄압 일지 등 의병을 탄압한 일본 측의 자료다.

서훈 신청된 의병장 41명을 출신지로 살펴보면 경북 14명, 경남 12명, 전남 8명, 전북 5명, 강원 2명으로 경북이 가장 많다.

경북 출신 의병장은 권문선, 박인시를 비롯한 김성달(金聖達'경북 문경군 신동면 노목), 김용출(金用出'경북 화안군 달미면 광동리), 김직현(金直玄'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화리), 이로침(李魯浸'경북 구미시 백산면), 이병기(李炳基'경북 구미시 백산면 인동), 김백룡(金白龍'경북 개녕군(김천시) 연명면 입석리), 황방우(黃方右'경북 개녕군 연명면 수오리), 최무용(崔武用'경북 개녕군 농소면 봉현동), 정파총(鄭把총'경북 개녕군 농소면 신촌), 최일진(崔一進'경북 개녕군 농소면 봉현동), 박부장(朴部將'경북 성주군 거구리), 김성칠(金成七'경북 봉화군 황엽령) 등 14명이다.

정 위원장은 이번에 찾은 41명의 의병장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확인한 결과, 미서훈자로 밝혀졌고 이들의 항일기록이 문건에 뚜렷하게 기록돼 있어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하게 됐다.

정 위원장은 "1993년부터 독립운동가 발굴 작업을 해오다 지난해 의병장 서훈 신청과 관련된 자료를 찾았고, 10여 권을 번역하고 사실 확인을 하는 작업 끝에 최종 259명을 확인, 이 중 41명에 대해 서훈 신청을 하게 됐다"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항일투사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고, 그들의 숭고한 뜻이 후손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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