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김연아의 엄마, 안현수의 아버지

이번 소치 올림픽의 여우 주연상과 남우 주연상을 뽑으라면? 단연 김연아, 안현수가 아닐까? 김연아 주연의 영화는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는 블랙 코미디일 것이다. 판정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지만 김연아 선수가 흘려온 땀과 눈물을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는 블랙 코미디. 반면에 안현수 주연의 영화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처럼 고난과 역경을 딛고 마침내 3관왕을 이루어 내는 감동의 드라마일 것이다. 이번 올림픽 내내 나의 마음을 울린 것은 김연아 선수의 엄마, 그리고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였다.

#김연아의 엄마

여섯 살 때 군포로 이사 간 예쁜 여자 아이는 일곱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빙판을 만났고 18년 후 피겨의 여왕이 되었고 영원한 전설로 남았다. 아는 스포츠 평론가가 들려준 이야기다.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김연아가 궁금했던 일본 취재진이 김연아가 연습하던 빙상장을 다 보고 난 다음에 '자, 이제 진짜 김연아가 연습하는 링크를 보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전설적인 피겨 스케이터가 탄생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연아를 키운 8할은 그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김연아 선수 어머니 박미희 씨는 김연아가 빙판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코치였고 매니저였고 후원자였다.

"김연아는 내 전공이었다. 학창 시절의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연아에 대해 공부했고 연애할 때보다도 뜨겁게 연아에게 헌신했다." 김연아 선수는 훈련할 빙상장이 없어 하루에도 2, 3곳을 돌아다니며 훈련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것도 낮에는 일반인들에게 대관해야 하니까 새벽이나 밤늦게. 남편의 생일도 잊고 큰딸 졸업식에도 못 가고 김연아 선수에게만 다 걸었던 엄마가 있었다. 비디오 영상을 보며 연구해서 나중에 전문가들이 김연아 선수 어머니에게 자문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번 올림픽 내내 근처 아파트를 빌려 한식을 해 먹인 사람도 엄마였다. 말도 안 되는 은메달로 억울한 딸에게 '끝났으니 너무 열 받지 말자. 금메달은 더 간절한 사람에게 줬다고 생각하자'며 위로한 사람도 엄마였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현수 선수는 이번 올림픽 내내 화제였다. 러시아에 귀화해 후배들과 같은 링크에서 뛰게 된 얄궂은 인연, 그리고 미모의 여자 친구에다 두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까지 안현수 선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스포츠 평론가뿐만 아니라 정치 평론가의 입에도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안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의 인터뷰가 문득 떠올랐다. 2010년쯤이었다. 내가 즐겨 듣는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아들에게 일어난 불합리한 일을 아버지의 가슴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의 인터뷰를 그냥 흘려들었다. 그러나 4년 뒤 올림픽에서 안현수가 러시아 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짐작하게 되었다.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는 작은 사업을 하는 보통의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일어난 불행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것밖에 없었다. 만약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해 금메달을 3개나 따지 않았다면, 그 아버지의 울부짖음은 묻혔을 것이다.

#내게는 세 살 난 딸 아이가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아이가 생겼을 때, 덜컥 겁이 났었다. 이제 배가 불러 올 텐데. 우리 딸은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만삭이 되었을 때 나는 정규직으로 스카우트가 되었다. 하지만 이 땅의 많은 예비 엄마들은 일 때문에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무조건적 헌신으로 딸은 세 살이 되었지만 나는 늘 고민한다. 늘 미안한 마음에 "뭐 사줄까? 뭐 먹고 싶어?"를 자주 물어보게 된다. 딸을 김연아처럼 안현수처럼 키우고 싶다면 김연아의 엄마처럼, 안현수의 아버지처럼 나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올림픽 스타의 엄마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모든 것을 걸었다. 삼 남매를 모두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내보낸 박승희 선수의 엄마는 삼 남매 뒷바라지에 늘 마이너스 통장 신세라고 했다. 왜 이 모든 것을 다 부모의 헌신으로 메워야 하는가? 제2의 안현수, 제2의 김연아가 있으려면 오로지 부모의 헌신만이 답이란 건 말이 안 된다. 이 부분을 차근차근 해결해야 하는 것이 평창을 준비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이언경/채널A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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