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선거의 계절과 출판기념회

조선시대에도 요즘 대학에서와 같은 혹독한 입학생 신고식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신참례다. 조선 건국 초부터 꾸준히 내려오던 것으로 관직에 들어온 신입에 가하는 집단 괴롭힘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본래 신참례는 고려 후기 권문세족의 자제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관직을 차지하자 이들의 버릇을 고쳐주고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정도를 넘어 그저 하급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전락하여 사회문제화되었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선거철마다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 입후보예정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다. 본디 출판기념회는 저작물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베푸는 모임으로, 가까운 지인들이 모여 함께 축하해주고 저자의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입후보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는 일종의 선거 출정식으로 성격이 변질되었다.

출판기념회는 또 '북 콘서트'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치장하여 축하 공연이 펼쳐지고, 정치인의 업적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는 등 형식 면에서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정치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수천 명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정신없이 눈도장이나 찍고 가는 시장판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신참례처럼 출판기념회도 문화행사가 아니라 정치행사로 전락하여 선거를 하기도 전에 유권자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공직선거법에는 이러한 행위를 제한하기 위하여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입후보 예정자와 관련 있는 저서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고 있다.

많은 유권자들은 정치인으로부터 금품이나 음식물을 제공받으면 50배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정치인이 개최하는 출판기념회에서 책이나 교통편의를 제공받는 것은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출판기념회에서 공짜로 책이나 교통편의를 받아도 선거법상 기부행위에 해당되어 과태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 지방선거가 올해로 꼭 20년을 맞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유권자에게 구걸하여 표를 얻기보다는 지역발전과 주민행복을 뒷받침하는 경쟁력 있는 정책과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비전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후보자, 그리고 성숙한 눈을 가진 유권자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동화/경상북도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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