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꽃뱀과 장성택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는 뱀이 참 많았다. 아침 등교 때면 밤새 차에 치여 죽은 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중 독사나 구렁이 종류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 고향 말로 '너불대'라 불리던 꽃뱀(花蛇'유혈목이)이었다. 초록색에 검은 무늬가 있고 목 부위에 붉은 반점이 있는 꽃뱀은 독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어린 우리들까지도 만나면 겁을 내지 않고 때려잡곤 했다.

농번기가 되면 농촌 학생들은 단체로 보리 베기, 모심기, 벼 베기 등 일손 돕기에 동원되었다. 보리 베기나 벼 베기를 나갈 때는 아예 잘 드는 낫 한 자루만 가지고 등교를 했다. 더운 여름날 보리를 베다 보면 쓰러진 보리 더미에서 갑자기 뱀이 나타나기도 했다. 주로 꽃뱀이었다. 그런데 꽃뱀은 가끔 이상한 행동을 했다. 꼭 코브라처럼 목을 납작하게 하고 대가리를 쳐들고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목이 날아가기 일쑤였다.

성경에 '뱀처럼 지혜로워라!'는 말이 나온다는데, 꽃뱀은 그러하지를 못한 것 같았다. 이미 상대가 만만하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밑천 떨어진 노름꾼처럼 허세를 부리다가 목이 날아가곤 했으니 말이다. 반면 강력한 독을 가진 독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먼저 공격을 해 피해를 입히거나 아니면 도망을 가 버린다. 어설픈 예비 동작으로 죽임을 당하던 꽃뱀과는 달랐다. 별다른 무기가 없는 꽃뱀으로선 상대방에게 겁을 주는 그 행위가 상책이었을지 몰라도,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통하는 것이다.

얼마 전 북한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체제 2인자의 쓸쓸한 몰락이 있었다. 워낙 예측이 불가능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동네의 일이라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겠다. 그렇지만 절대 권력자의 고모부로서 권력 승계자 후견인 역할까지 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처형되는 걸 보고는 우리 남쪽 국민들까지도 적잖이 놀라는 것 같았다. 결과에 대한 관전평이란 늘 상투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대부분의 여론은 '먼저 치던가 아니면 일찌감치 물러나던가'였다.

이번 숙청사건을 보면서 어렸을 때 본 꽃뱀을 생각한다. 꽃뱀은 왜 공격할 강력한 무기도 없으면서 도망을 가지 않고 허세를 부리다가 아이들이 휘두른 낫에 목이 날아갔을까. 장성택은 왜 자신의 세만 믿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어린 절대 권력자에게 비명횡사당하고 말았을까. 또 그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권좌에서 내려오지 못했을까. 둘 다 상대방은커녕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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