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영희와 함께 떠나는 세계일주] (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1703년 표트르 대제가 건설…세계적 예술가 낳은 '문화수도'

양파 모양의 지붕이 독특한 그리스도 부활성당.
양파 모양의 지붕이 독특한 그리스도 부활성당.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심장부 궁전광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심장부 궁전광장.

보름 넘게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소치 동계올림픽의 성화가 사그라졌다. 편파 판정 의혹과 같은 오점도 남겼지만, 개'폐막식에서 선보인 수준 높은 무대는 러시아가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를 보유한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근사했던 무대의 주요 출연자는 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발레단의 울랴나 로파트키나,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 등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다. 역사와 문학, 발레, 작곡가 등이 내놓은 주제들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연결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가 자랑하는 수많은 예술가와 작품이 잉태된 곳이 바로 러시아의 문화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예술의 고향 러시아의 문화수도

올해로 도시 탄생 311주년을 맞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네바 강 하구의 늪지 위에 세워진 도시다. 1703년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 북방전쟁을 치르며 도시건설을 시작했고,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는 그 시작점이 됐다. 도시 방어를 위해 지은 이 육각형의 요새는 18세기 후반부터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됐는데 도스토옙스키도 여기서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요새 중앙에는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황제들의 석관이 나열된 이 성당은 로마노프 왕조의 봉안당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표트르 대제의 유해 역시 이곳에 안치돼 있다. 동방정교회의 비잔틴 양식이 바로크와 만나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당시의 근대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넵스키 대로는 18, 19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늘어선 옛 시가지를 관통하며 볼거리를 펼쳐놓는다. 그 중심에서 당당히 위용을 자랑하는 것은 카잔 성당. 좌우로 넓게 펼쳐진 94개의 코린트식 기둥과 중앙에 우뚝 솟은 돔이 보는 이를 단번에 압도한다. 길 건너편엔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을 본떠 지었다는 그리스도 부활 성당이 마주 보인다. 러시아를 연상할 때 흔히 떠오르는 양파 모양의 지붕이 눈에 익은 곳이다. 내부는 벽면과 천장을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로 빈틈없이 장식해 놓았는데, 성당에 입장하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탄성이 앞선다. 도시 관광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규모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 이삭 성당. 프랑스 건축가 몽페랑이 40년에 걸쳐 완성한 이 성당은 100㎏의 황금을 입힌 돔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여행을 시작하거나 마무리하기에 적당하다.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

이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꼽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명성답게 항상 인파로 붐빈다. 역대 러시아 황제들의 거처였던 겨울 궁전이 이 박물관의 모태로, 로코코 양식의 장식으로 뒤덮인 실내장식에서 당시의 영화를 가늠할 수 있다. 겨울 궁전이 박물관이 된 것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미술상 고츠콥스키에게서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 225점을 사들인 해인 1764년부터다. 그러다 소장품 규모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10월 혁명 이후. 이때 귀족들에게 몰수한 수많은 미술품이 이곳으로 유입되었고 그 결과 인류의 문화 예술적 성취를 한곳에 모을 수 있었다. 지금은 1천 개가 넘는 전시실에 무려 300만 점이 넘는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에르미타주의 방대한 컬렉션을 모두 보려면 수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정 주제를 선별해서 보더라도 하루 동안 감상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동선을 미리 계획하는 것이 좋다.

로마노프 왕조의 화려한 문화유산이 가득한 도시 이면에는 역사의 상처도 남아 있다. 1905년 피의 일요일, 1917년 2월과 10월 혁명에 이르는 격동의 날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계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남겨 놓았다. 이 혁명을 온몸으로 겪은 장소가 지금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겨울 궁전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10월 혁명 당시 임시정부 요원들이 체포된 겨울 궁전의 한 방에는 볼셰비키 정권이 탄생하는 순간인 10월 26일 새벽 2시 즈음에 시계가 멈춰 있다. 겨울 궁전의 정문은 궁전광장으로 연결되는데, 이곳은 피의 일요일 현장이다. 노동자들의 평화적 시위 행렬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건으로 황제는 신뢰를 잃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러시아 대문호들의 삶의 터전

이 도시의 여름철 백야와 어둡고 긴 겨울밤은 분명히 작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고골, 나보코프,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대문호들의 삶의 터전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넵스키대로 주변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거리와 서민의 삶은 작품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센나야 광장, 넵스키대로, 문학기념관 등 도시 여기저기에 작가와 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그들 중 이 도시 안에서만 스무 번을 이사했다는 도스토옙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고 표현한 작가다. 그의 기념관엔 '죄와 벌'의 친필 원고, 손때 묻은 책, 사용한 가구들이 예전 상태 그대로 전시돼 있어 작가 생전의 모습을 가깝게 느끼게 한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공연무대인 마린스키 극장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154년 전통을 자랑하는 마린스키 극장과 지난해 5월 개관한 마린스키Ⅱ에서는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오페라 및 발레가 매일 상연된다. 놀라운 점은 매일 열리는 클래식 연주가 대부분 매진이라는 사실. 그만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문화를 누리는 계층이 두텁고 공연관람이 일상적인 곳이다. 마린스키 극장 맞은편엔 1862년 안톤 루빈스타인이 설립한 림스키코르사코프 콘서바토리가 있다. 유명한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가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고전 발레와 오페라의 초연 무대, 러시아 대문호의 산실이자 역사적인 혁명의 배경이 된 곳. 품위 있고 화려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풍요로운 문화유산으로 사계절 내내 여행자를 유혹하고 있다.

전 '대구문화' 통신원 android2019@nate.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