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주도인 슈투트가르트. 전기와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이 활발한 산업도시지만 관광으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둘러볼 만한 유적지는 대부분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6년 벤츠 박물관, 2009년 포르쉐 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위상이 달라졌다. 두 자동차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만 연간 100만 명이 넘는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자동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덩달아 독일 내 최대 와인 산지로서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와인 박물관 등 향토산업도 중요한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의 역사, 벤츠 박물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우토반을 2시간 30분가량 달렸다. 도로를 달리는 차 중 상당수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세 꼭지별 엠블럼을 달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둥근 금속 띠와 유리벽을 나선형으로 쌓아 올린 듯한 모습의 벤츠 박물관이 자태를 드러냈다. 자동차의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한 건축 디자인이다.
오디오가이드 단말기를 목에 걸고 길고 둥근 모양의 엘리베이터에 탔다. 벤츠 박물관은 맨 위층인 8층부터 경사로를 따라 한 층씩 내려오며 관람을 한다. 꼭대기층의 문이 열리자 1886년 개발된 세계 최초의 가솔린 차량 2대가 동시에 눈앞에 나타났다. 다임러가 개발한 4륜 차량과 칼 벤츠가 발명한 3륜 차량이다. 꼭대기층은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의 초기 자동차가 전시돼 있다. 1902년 만든 40마력짜리 메르세데스-심플렉스 40PS는 당시 최고 속도 80㎞를 기록했다는 설명도 붙어 있다. 1894년 자동차 경주대회를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과 이때부터 자동차가 말과 자전거를 밀어내고 도로의 주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설명도 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전시된 차량 사이를 뛰어다녔다. 한참 차의 제원표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작은 책자에 각 차량의 제원과 특징을 적어넣었다. 지역 아동들에게 벤츠가 제공한 체험학습 자료다. 한 아이가 1960년 벤츠가 차량 테스트용으로 개발한 실험차량 이곳저곳을 살폈다. 긴 케이블과 센서를 뒤 차량과 연결해 각종 차량 상태를 측정하는 차량이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엔진의 작동원리를 시험하는 손잡이를 휙휙 돌렸다.
이곳에서부터 차례로 내려가며 125년 자동차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연대기 여행이 시작된다. 1만6천500㎡ 면적에 벤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12개 전시관으로 이어졌다. 1886년 특허를 얻었던 전동차부터 특수 용도로 제작한 희귀 자동차, 경주용 스포츠카, 최근 출시 모델까지 자동차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벤츠가 개발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장착한 항공기도 줄에 매달려 있다. 1991년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소유했던 500SL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생전에 타던 방탄 의전 차량, 1930~1938년 일본 히로히토 일왕이 타던 차량도 있다. 일왕의 차량 옆에는 일본 왕실의 상징인 국화꽃을 새겼다. 전시장은 벤츠가 개발한 첨단 기술과 자동차까지 이어진다. 시대별 경주용 자동차 전시장에는 시뮬레이터가 있다. 벤츠에서 포뮬러원 경주에 출전한 자동차 중 우승을 차지한 자동차의 역사와 기록을 보여주고, 직접 그 차량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체험하는 장치다. 예약자에 한해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 체험 행사도 마련된다.
벤츠 박물관은 지난해 70만2천 명이 방문하는 등 누적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방문객 중 외국인의 비중이 40%를 차지한다. 단순한 전시에 그치지 않고 영화 페스티벌, 재즈 공연 등 연간 190여 개의 크고 작은 행사도 열린다. 벤츠 박물관 홍보담당자 롤랜드 한스 씨는 "내국인 방문객 수가 줄어드는 추세여서 외국인들을 위한 특별 전시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르쉐 박물관과 와인 박물관
포르쉐 박물관은 벤츠 박물관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슈투트가르트가 고향인 포르쉐의 로고에는 중세 때부터 사용돼온 뷔르템베르크 주의 문장과 슈투트가르트의 문장이 결합돼 있다. 포르쉐라는 회사 이름은 1950년에 붙였다.
포르쉐 박물관은 포르쉐 생산공장과 차 전시장 등이 복합공간을 이루고 있는 포르쉐플라츠의 한 구성 건물이다. 건너편에 대형 판매장이 있고 911 등 생산라인도 연결돼 있다. 외관도 독특했다. V자 형태의 콘크리트 기둥 3개가 하얀색 건물을 떠받치는 형상이다. 마치 건물이 하늘에 붕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건물을 디자인한 오스트리아의 델루간 마이슬 사무소는 공모를 거쳐 선정됐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타입64'라는 이름의 차량이 은빛 속살을 드러냈다. 나치가 베를린-로마 간 레이스 출전을 위해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에게 의뢰해 제작한 자동차로 포르쉐 박사가 64번째로 만든 차량이다. 처음으로 포르쉐라는 이름을 단 경주용 차량이기도 하다.
줄지어 전시된 차들을 따라가다 보면 최초의 양산차 356과 최초의 비틀, 최초의 박스터, 제임스 딘의 애마 550스파이더 등을 줄줄이 만날 수 있다. 중앙에는 포르쉐가 개발한 유명 스포츠카가 모여 있다. 전시된 경주용 자동차와 스포츠카는 대략 80여 대로 주기적으로 바꿔 전시된다. 박물관 로비에는 거대한 유리벽 너머로 포르쉐 정비사가 전시차량을 정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벤츠 박물관에서 차로 15분가량 달리면 한적한 전형적인 유럽의 시골마을과 와인 박물관이 나타난다. 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 뒤로 나지막한 언덕은 온통 포도밭이다. 슈투트가르트 인근 지역은 독일 내에서도 유명한 와인 산지다. 1979년 문을 연 박물관 인근에는 12㎞ 구간에 걸친 걷기 길도 마련돼 있다. 오래된 포도밭을 따라 재배하고 있는 포도의 품종을 알려주는 표지판도 서 있다. 이곳에는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던 와인잔과 고급스럽게 장식된 와인통, 1885년부터 포도즙을 짜던 기계와 다양한 전시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와인을 시음하는 공간을 시작으로 와인 주조 기구와 오래된 잔, 주전자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