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교황의 손목시계

그저께 바티칸에서 열린 신임 추기경 서임식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서임과 교황의 한국 관련 발언이 화제였다. 추기경들을 포옹하는 과정에서 예복 아래로 드러난 교황의 시계 또한 눈길을 끌었다.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대중 브랜드 '스와치'의 50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로 추기경 때부터 애용해 온 시계라고 한다.

추기경 시절 관저 대신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 기거한 일화나 낡은 모양이 틀어질 때까지 신는 검정 구두, 승용차를 직접 몰거나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해 온 소탈한 성품으로 미뤄볼 때 교황의 스와치 시계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국가원수급의 의전 특권도 마다하고 아르헨티나 일반여권을 연장해 사용하는 등 교황의 행보는 프란치스코 이름 그대로 청빈의 아이콘이다.

반면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들이 국민권익위의 권고를 무시한 채 임원에게 3천㏄ 이상의 관용차를 제공하다 국회 지적을 받았다. 14개 공공기관 중 수자원공사 등 12개 기관이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안전행정부의 지침에 전용차량 배기량이 장관급은 3천300㏄, 차관급은 2천800㏄로 규정돼 있지만 이를 따르는 공공기관은 극소수였다. 국익과 품격이 걸린 외교 의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는 공기업이 행세만 따지고 있다는 것은 우습다. 요즘 공기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어떤 때인가.

전국시대 위나라의 처사 기계(箕季)의 일화다. 문후(文侯)가 그의 집을 찾았는데 담장이 다 허물어져 가는데도 고칠 기색이 없자 왜 안 고치느냐고 물었다. "아직 고칠 때가 아닙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담장은 왜 구불구불한가라고 묻자 "원래 땅의 경계가 그렇습니다"고 답했다. 마침 저녁때가 되어 기계가 등겨로 지은 밥과 박나물로 끓인 국을 대접했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신하가 "별 대접을 받지 못하셨네요"라며 비꼬자 문후는 "기계를 한 번 보고 세 가지를 얻었다"고 대꾸했다. "담장을 고치지 않는 것은 백성의 농사 때를 빼앗지 말라는 가르침이고, 굽은 담장은 국경을 침범해 싸우지 말라며 경계함이다. 거친 음식은 백성에게 너무 많이 거둬들이지 말라는 것이다"며 타일렀다.

대형 관용차를 타는 게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혹시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특권 의식이 싹트지나 않을지 그게 걱정이다. 교황의 플라스틱 손목시계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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