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스카 누구 품에? 3월 2일 웃는 사람은?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아카데미 수상 노리는 대작들의 향연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스포츠 경쟁이 국가주의와 상업주의로 물들어 늘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극도의 성실성으로 자신을 단련해나가는 운동선수는 모두 숭고하고 아름답다.

올림픽도 끝난 지금, 우리는 낄 자리가 없는 남의 나라 잔치이지만 또 다른 재미있는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극장가에는 아카데미 영화제를 앞두고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린 영화들이 속속 개봉 중이다. 스포츠나 영화 모두 경쟁이라는 제도가 가지고 있는 백 가지 문제점을 들 수도 있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선수나 영화 그 자체는 위대하다. 이제 좀 느긋하게 다른 경쟁을 즐길 차례다.

현지 시간으로 3월 2일 일요일, 한국 시간으로는 3월 3일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상은 1927년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영화가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지금, 이 영화제는 세계적인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칸 영화제를 포함한 세계 3대 영화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칸느,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지언정 흥행 면에서는 큰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것에 비해,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레터르가 붙으면 그 영화는 흥행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작품상 후보로 '아메리칸 허슬' '노예 12년' '그래비티' '달라스바이어스 클럽' '허' '네브라스카' '필로미나의 기적' '캡틴 필립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올라 경합을 벌인다. 이 중 '아메리칸 허슬' '노예 12년' '그래비티'로 압축된다는 중평이다. 제각기 다른 장르, 다른 스타일, 다른 시대 배경,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고, 수상할 경우 제각각 여러 가지 기록을 남길 것이다.

지난해 3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그래비티'의 경우, 최초의 SF 영화 수상작이 나올지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지금 상영 중인 '아메리칸 허슬'은 4명의 주요 배우들이 모두 연기상 후보로 오른 진기록을 가진다. 이번 주 개봉하는 '노예 12년'의 경우 최초의 흑인감독 수상자가 나올지 기대가 된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아메리칸 허슬'과 '노예 12년'이 나란히 상을 나누어 가졌다. 코미디 뮤지컬 부문 작품상에 '아메리칸 허슬', 드라마 부문 작품상에 '노예 12년'이 수상했고, 아카데미에서는 '아메리칸 허슬'이 10개 부문, '노예 12년'이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자웅을 겨룬다.

'아메리칸 허슬'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FBI 요원과 금융 사기꾼이 손을 잡고 공직자의 비리를 적발하기 위해 함정 수사를 펼치는 이야기이다. 디스코의 시대다운 호사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사기꾼, 갱스터, 공무원들이 펼치는 서로 속고 속이는 거짓말의 향연을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요란스럽고 화려하며 기절초풍하게 웃기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환영받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당시 미국 사회를 대놓고 비꼬는 풍자정신 충만한 블랙 코미디가 한국에서 성공한 예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역시 배우들이다. 잘생기고 미끈한 배트맨이었던 크리스천 베일이 체중을 20㎏ 늘리고 볼록 나온 올챙이 배와 벗겨진 머리를 다듬는 오프닝 신은 꾸미고 숨기고 위장하고 그럴싸하게 보이게끔 해서 목표한 바를 성취하는 사기꾼의 속성을 상징한다. 이는 또한 거짓과 위선, 권모술수로 가득한 미국 권력층에 대한 풍자로, 시각적인 충격과 함께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메시지를 응축하여 보여주는 훌륭한 오프닝이다.

'노예 12년'은 영국 출신 흑인 감독인 스티브 맥퀸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비디오 아티스트로 일찍이 이름을 알렸던 그는 데뷔작 '헝거'로 칸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고, '셰임'으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신세대 거장으로 발돋움한 감독이다. 세 번째 연출작인 '노예 12년'은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낸 의미 있는 작품이다.

1970년대 TV에 방영되어 어마어마한 화제와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뿌리'의 현대적 재림이라고나 할까. 영화는 주인공의 강인한 영혼이 이끄는 압도적인 힘으로 관객을 장악한다. 1840년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뉴욕의 흑인 음악가 솔로먼 노섭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플랫'이라는 새 이름의 노예로 팔려간다. 그는 노예제도가 남아있는 루이지애나로 가서 악명 높은 노예주 밑에서 12년 동안 일한다. 단 한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노섭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실화이다. 솔로먼 노섭의 자서전 '노예 12년'은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함께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흑인 노예의 비참한 실상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이 영화에도 뛰어난 배우들의 활약이 있다. 솔로먼 역의 치웨텔 에지오포를 비롯하여, '셜록'으로 이름을 알린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스티브 맥퀸의 페르소나 마이클 패스벤더가 농장주로 분하고, 브래드 피트의 카리스마 넘치는 카메오 출연이 인상 깊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로 신고식을 한 여성노예 팻지 역의 루피타 니용고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데뷔일 정도다. 악독 농장주의 여성노예에 대한 집착과 갈등의 드라마는 사랑의 속성과 휴머니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거리를 남기는 강렬한 에피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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