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이 그래요. 심심하다고. 어떻게 삶이 재미가 없을 수 있죠? 이렇게 재미있는데…."
배우 오태경(32)은 유쾌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사는 듯하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놀이로 즐겁고 재미나게 삶을 즐긴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놀이는 택시를 타서 운전기사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볼 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는 게임 회사 직원이 되기도 하고, 일반 회사 직원처럼 아저씨와 이야기한다고 한다. "사기를 치는 건 아니고요.(웃음) 다른 사람이 되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다음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면 이런저런 일들을 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죠."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삶을 즐기는 이유는 아마도 많은 고통과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영화 '황진이'를 촬영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는 걸 알게 됐죠.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연기에 대해서도 꾸중을 들었어요. 장윤현 감독님이 '연기 준비 하나도 안 하고, 편한 대로 한다'고 했어요. 딱 걸린 느낌이었죠. 바지를 내렸는데 팬티까지 내려진 기분이라고 할까요? NG 소리를 60번 정도 들었죠. 솔직히 교통사고 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자연스럽게 하차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뭐를 딱히 준비해 변한 건 없지만,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서 연기와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 오태경은 "시간과 연기력은 비례하는 것 같다"고 짚었다. "연기는 감정을 끌어내고 서로 교감을 해야 하잖아요. 억지로 어떤 감정을 꺼내야 할 때도 있어서 힘들어요. 또 직접적인 체험이 없는 타인의 삶을 표현해야 하니 가끔 어려울 때가 있죠. 하지만 어려워도 도전하는 게 연기의 재미인 것 같아요."(웃음)
그는 이른바 '쫄리는 느낌'을 "지향한다"고 웃는다. 자신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일을 한다. 많은 이들이 낭떠러지 위에 서 있어 보진 않았겠지만 그 느낌이 무엇일 것 같은지는 안다. 안 떨어지려고 버티면서, 의지를 키워 살려고 바동거리는 기분. "어떤 부담이 있어야 하고, 긴장감도 전해져야 일이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3월 6일 개봉하는 영화 '조난자들'(감독 노영석)은 폭설이 내리는 강원도 산골 오지의 한 펜션에 고립된 허세 여행자 상진(전석호)이 친절한 전과자(오태경), 의뭉스러운 경찰(최무성) 등 의심이 가는 인물들과 원인 모를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오해와 반전의 스릴러. 추위와 싸운 현장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별로"라고 했다. 심지어 폭설로 쌓인 눈을 보고 "와~ 큰 케이크! 오늘 생일인 사람 없어요?"라고 장난을 쳤다는 그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나름의 재미를 찾거든요. 새로운 환경에서 재밌는 걸 찾아보면 정말 많아요. 석호와 같이 방을 썼었는데 12회 차 촬영에 둘이서 소주 29병을 먹었어요. 콜라는 두 상자 정도 마셨고요. 적당히 재미있게 촬영한 것 같아요. 하하하."
오태경은 어렸을 때부터 어수룩한 말투 때문에 주위로부터 혼이 많이 났다고 했다.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는 과거 "연기할 때나 평상시에나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자신의 말투가 아니라 답답했다. 시간이 흘렀고, 그는 자신의 평상시 말투를 그대로 쓸 수 있는 작품을 만났다. 바로 '조난자들'이다. "저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았어요. 연기적인 것이나 다른 상황적인 것들을 준비하는데 좀 수월했죠."
아역 배우로 시작해 21년째 달려오고 있는 그는 현재까지 온 과정을 "버티기 싸움"이라고 했다. "아역 출신 배우 사이에서 누가 얼마만큼 버티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30대가 되니 현실적인 어떤 벽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길로 빠지면 거의 돌아오는 이들이 없어요. 또 힘든 과정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얼마만큼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 그게 사실이니까요. 저요? 저도 20대 때 PC방 사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있죠. 하지만 한 번도 다른 방향을 가진 않았답니다."
사실 그를 독하게 마음먹게 한 건 아버지다. 과거 재즈 그룹 템페스트 멤버로 활동했던 아버지는 예술가로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진정한 실력이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다독여 준 선배이기도 하다. "진짜 실력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죠. 실력이 있다면 명예를 얻고, 부는 당연히 따라올 테니 외적인 것에 끌려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오태경은 아버지와의 일화를 전했다. "2년 전쯤인가 아버지가 '이제 해볼 만큼 해보지 않았느냐'고 하셨어요. 솔직히 전 어머니가 억지로 연기를 시켜서 하게 된 경우거든요? 영화 '화엄경' 할 때는 한 학기 동안이나 학교에 안 갔죠. 할 줄 아는 게, 배운 게 이것밖에 없었어요. 아버지의 말에 무너지거나 자괴감이 든다기보다 무척 화가 나더라고요.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 '그럼 더 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기적인 말일 수 있는데요. 제게도 팬이 있다면 감사한 마음이 있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그분들을 위해서 연기는 안 할 거예요. 또 가족을 위해서도 아니고요. 제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연기거든요. 어떻게 보여야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지금도 정상에 올라가지 못했어요. 언제 갈 수나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제가 좋아하니 끝까지 달려가긴 할 거예요. 여자친구도 저를 이해 못 하면 미안한 말이지만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를 몰랐던 30년을 아무 문제없이 살아왔으니까요. 돈 못 번다고 마찰이 생기고 싸운다면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어머니들 사이에서 드라마 '육남매' 속 창희로 아직도 알려진 오태경의 반전 이야기 하나 더. 창희는 공부 잘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오태경을 만나는 어머니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창희와 나는 완전히 반대"라고 강조했다.
"가끔 누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뭐하고 싶어?' 하면 '공부 더 하겠다'고 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전 더 놀 거예요. 10대 때 무전여행을 못 해봤어요. 해봤어야 했는데…. 정말 아쉽다니까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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