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단잠에 빠져있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무언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라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컵 하나가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저녁에 마시던 머그잔을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둔 채 잠들었었는데 바로 그 머그잔이 떨어진 것이었다. 난데없이 책상 위에 안전하게 놓여있던 머그잔이 왜 떨어진 것일까 하며 의문을 품을 즈음 떨어진 컵 주변을 킁킁거리며 탐색 중인 한 마리의 털뭉치를 발견했다. 바로 범인은 '앨리샤'였다.
앨리샤는 그 전에도 수차례 '물건 떨어트리기' 전적이 있었다. 책상 또는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물건을 자신의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는지 안약, 립밤, 딱풀, 약통 등 앞발로 톡톡 쳐서 굴릴 수 있는 물건들을 건드려보고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게 녀석의 특기라면 특기다. 처음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때론 일부로 앨리샤가 가지고 놀 만한 물건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고, 위험하다 싶은 것은 올라갈 수 없는 곳에 치워놓기도 했다. 그러나 머그잔처럼 제법 무게가 나가는 물건까지 떨어트리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다행히 빈 컵이라 물이 쏟아지진 않았고, 튼튼한 재질이어서 깨지지도 않았지만 아차 방심했던 나를 탓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렇게 앨리샤 덕에,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며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익히고 있다. 앞서 말한 물건 떨어트리기는 어느 정도 애교로 넘어갈 수 있지만 앨리샤는 또 다른 취미(?)가 있다. 그중 가장 골치 아픈 악취미는 바로 '뜯기'다. 발톱으로 긁는 습성이 있는 고양이들을 위해 반려인들은 일명 '스크레쳐'라고 불리는 발톱으로 뜯을 수 있는 판이나, 줄을 감은 기둥을 집에 구비해 놓곤 한다. 우리 집에도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만큼 스크레쳐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러나 늘 아침저녁마다 알아서 스크레쳐를 뜯으며 자신의 발톱을 다듬는 체셔와 달리, 앨리샤는 도통 거기서 발톱을 다듬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가죽의자 위나 가방 위에서 자세를 잡고 앉아서 발톱으로 뜯는다. 처음엔 멋모르고 '당했고', 그다음엔 눈앞에서 '목격'했다. 눈앞에서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가방을 뜯는 모습에 뭐라고 할 타이밍조차 잡지 못했다. 하지만 고양이의 발톱은 꽤나 날카로워서 그나마 천으로 된 가방의 경우에는 티가 덜 나지만, 가죽의 경우에는 그냥 애교나 습성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선명하게 자국이 남는다. 그래서 박수를 치거나 큰목소리로 앨리샤를 향해 야단을 쳐 보기도 하지만 그 순간 달아나기만 할 뿐 결국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급기야, 엄마의 핸드폰 케이스까지 뜯어놓았다.
평소엔 우리 집 애교담당 앨리샤지만 이때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고뭉치'가 되어 버린다. 이럴 때 앨리샤는 정말 얄밉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범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나마 앨리샤가 훼손시키는 게 내 물건일 땐 괜찮지만, 부모님의 물건이라든가 방문한 다른 이의 가방까지 눈독 들일 때면 정말 위험천만하다.
이런 불안한 반려인의 마음을 알아채고 눈치껏 고쳐주면 좋으련만, 지난 2년간 해결책은 눈에 안 띄게 가리거나 감추는 방법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결국 지금도 앨리샤가 건드릴 만한 물건은 '가리고, 치우고'를 반복하고 있다. 왜냐하면 말이 통하는 사람의 습관을 고치기도 힘든데, 이해를 시킬 수도 없는 반려동물의 습성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물건들이 계속해서 망가지는 것을 관망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 내가 찾은 최선의 타협점이기 때문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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