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낭군을 생각하는 여심(女心)은 돌보다 굳고 단단하다고 한다.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는 꿋꿋한 절개로 가정을 일구는 삼종지도(三從之道) 정신은 후진들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된다. 하지만 이와 대조되는 한 시문을 대하면서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현대의 여성상에서도 고금(古今)을 넘나드는 유사함을 발견한다. 김씨 낭군의 비장한 으름장에 단월승이 정부(情夫)였음을 숨김없이 시인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북녘엔 김씨 낭군 남녘엔 단월승인데
첩의 마음 뜬구름처럼 정해져 있지 않네
맹세한 산의 무너짐이야 월악인들 남았겠소.
北有金君南有丞 妾心無定似雲騰
북유김군남유승 첩심무정사운등
若將盟誓山如變 月岳于今幾度崩
약장맹서산여변 월악우금기도붕
【한자와 어구】
北有: 북녘에 있다. 金君: 김씨 낭군, 곧 김목. 南有: 남녘에는 있다. 丞: 스님, 곧 단월승. 妾心: 첩의 마음. 無定: 정해져 있지 않다. 似雲騰: 구름같이 오르다, 뜬구름. // 若將: 만약 장차. 盟誓: 맹세. 山如變: 산과 같이 변하다. 月岳: 월악산. 于今: 지금에. 幾度崩: 몇 차례나 무너지다.
맹세한 것처럼 산이 무너진다면(盟誓山如變)으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금란(金蘭)이나 앞 시문(수집삼릉장'주간매일 2월 20일 자 36면)에 이어져 유정(柳亭) 양여공(梁汝恭:1378~1431)의 작품으로 알려진다. 시문에 등장한 김군(金君)은 김목이고, 단월승은 단월역 승(丞:관명)으로 금란의 미색에 깊이 빠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북녘에는 김씨 낭군이, 남녘에는 단월승이 있어/ 첩의 마음은 뜬구름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오// 만약 맹세한 것처럼 정말로 산이 무너진다면/ 월악산은 지금까지 벌써 여러 차례 무너졌겠지요'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맹세한 것처럼 산이 무너진다면'으로 번역된다. 김목이 서울로 떠날 때 사랑했던 금란이 굳게 맹세했다. "월악산이 무너질지언정 제 마음은 변치 않습니다." 그러나 금란이 단월승이란 사람과 깊은 관계란 소문이 전해졌다. 김목이 금란에게 편지를 썼다. "네가 단월승을 사랑한다는 소문을 듣고 내 마음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내 기필코 육모 방망이를 들고 가서 '월악산이 무너질 것이다'는 네 약속을 추궁하겠다." 편지에 대한 금란의 답장이다.
두 마음은 갖게 되는 시적 화자를 만난다. 화자는 두 남자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뜬구름 같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산이 무너졌다면 여러 차례 무너졌을 것이라는 자기 처지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순진하게 뜬구름 같은 기생의 절개를 믿었던 김목이 과연 어리석은 사람일까. 남자의 우직한 순정에 비해 여우 같은 심사를 가진 금란의 배신이 얄밉다고 해야 할까. 오늘 현실과 대비하면서 당대를 돌아본다.
유정 양여공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대장군 양능길의 15대손이며 현령 양숙의 아들이다. 자는 경지이며 호는 유정이고 본관은 충주다.
1396년(태조 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05년(태종 5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판사랑을 비롯하여 종사랑, 예문관검열, 승정원주서, 성균관주부를 역임했다.
1414년에 병조좌랑이 됐고 이어 저평현감을 거쳐 이듬해 좌도전운판관이 됐다. 이조좌랑, 성균관직강지제교, 예조정랑을 거쳐서 1418년(세종 즉위년) 병조정랑으로 재직 중 병사를 상왕인 태종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로 판서 박습 등과 함께 장형을 받고 함안에 유배됐다.
그 후 청풍, 충주 등지로 유배되다가 1431년 충주에 있던 중 기생 예성화를 빼앗아 원한을 품은 유연생의 위조고발에 의해 반역을 음모하였다는 죄로 사형당했다. 시와 글씨에도 능했으며 지극한 효행으로 영의정에 증직되고 효자문을 세워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장희구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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