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세상 별난 인생] '알알이푸드' 대표 윤지영 씨

간장'된장'메주와 사랑에 빠진 '처녀 사장님'

음식의 맛을 내는 기본은 장(醬)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장을 담가 먹었다. 장을 잘 담그는 며느리, 장을 잘 관리하는 며느리가 들어온 것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음식 솜씨 좋은 며느리, 손끝이 야무지고 살림을 잘하는 며느리로 여겼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에게 장 담그는 비법을 전수했고,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잘 넘겨주지 않듯 함부로 장독을 맡기지 않았다.

그래서 며느리들은 수년에 걸쳐 시어머니에게 장 담그는 법을 배우고, 장독을 지극 정성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요즘 장 담글 줄 아는 며느리는 찾기 힘들다. 시집이나 친정어머니로부터 얻어먹거나 사다 먹는다.

◆'장은 과학이다' 승부

'알알이푸드' 윤지영(36) 대표는 이런 며느리를 대신해 장을 담근다. 주위 사람들은 결혼도 하지 않은 윤 대표를 '된장녀'라고 놀려댄다. 그러나 윤 대표는 된장녀라는 말이 싫지 않다. 된장을 팔아 돈을 벌고 일자리도 만들고 사회 기부도 하는 등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표가 정성을 기울여 담그는 장류는 된장을 비롯해 간장, 고추장, 청국장, 미숫가루, 메주 등 여섯 가지. 현재 하나로마트를 비롯해 홈플러스, 중소 식자재 마트 등에 납품하고 있다. 대구경북은 물론 서울, 강원, 제주도까지 공급한다. 몇 년 전부터는 해외에도 진출해 홍콩 시티슈퍼에도 납품하고 있다. 된장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청국장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알알이푸드의 장맛에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윤 대표는 '장은 과학'이라고 단언한다. "좋은 재료를 써서 과학적 방식으로 정성을 기울여 담그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장은 집에서 만드는 장과 달리 잡균을 제거하고 발효에 꼭 필요한 균만 넣는다. 그래서 장맛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균일하다. "장은 담그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요. 최적의 발효조건을 찾아 시스템화한 겁니다. 가장 맛있는 공식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콩을 삶는 방식도 전통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가마솥 대신 압력솥을 사용한다. "영양과 맛의 손실을 줄이기 위함이고, 또 된장 맛도 달아요." 메주성형기도 개발했다. "삶은 콩을 발로 밟거나 절구통에 찧으면 비위생적이잖아요. 그래서 만들게 됐어요."

메주성형기 만들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60번 이상 뜯었다 다시 조립하는 등 실험 끝에 만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철공소에 가면 사장이 저를 피했죠"라고 털어놨다. 윤 대표는 메주성형기 등 특허를 받은 것만 9개다.

윤 대표는 또 '장맛은 손맛'이라는 말을 영 마뜩잖아 한다. "조리는 과학이에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손대중으로 간을 딱딱 맞춰요. 하지만 그들의 손맛이란 무수히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몸에 체득된 겁니다. 결론은 과학입니다."

▶고시생에서 장류 사업으로

윤 대표는 법대를 나와 서울 고시촌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1차 시험에 합격하는 등 가능성이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서른을 1년 앞둔 2007년 미련을 버리고 낙향했다. 장류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도와 영업에 뛰어들었다. "제가 영업에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천직이에요. 천직."

2년 정도 아버지 밑에서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은 후 2009년 회사를 설립했다. 돈 벌 때마다 조금씩 사 놓은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1천600여㎡ 규모)에 공장을 세웠다. 부족한 돈은 은행에서 빌렸다. 2010년 첫 생산을 시작했다. "제게 또순이 기질이 있나 봐요. 대학 입학 후 독립하라며 아버지가 돈을 대주지 않았어요.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용돈은 아르바이트로 벌어 썼어요. 순전히 아버지 덕분(?)입니다."

윤 대표의 영업 실력은 다시 빛났다. 식자재 마트는 물론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입점에도 성공했다. "마트 근처에 방을 잡아 놓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시식행사를 열었어요. 된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시식하게 하면 사가요. 사람들은 평소 먹어온 장은 잘 바꾸지 않아요. 그게 힘들었어요." 윤 대표는 당시 납품을 하기 위해 8개월 동안 한 달에 세 번 이상 서울에 올라갔다고 했다.

알알이푸드는 작년 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직원 9명 가운데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생산설비를 갖춰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갖춰지면 일자리도 늘겠지요."

◆ 기부,그리고 결혼(?)

윤 대표는 소리 없는 기부천사다. 소록도와 마산'성주 지역 요양시설 등에 장을 보낸다. 소록도에는 여름과 겨울 1년에 두 번 600여 명분의 된장과 간장, 고추장, 청국장 등을 보낸다. 2010년 처음 생산한 제품도 소록도에 보냈다. 보낼 때는 상표를 떼고 보낸다.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좋은 일 하는 데 생색내지 말라고."

윤 대표는 올해 나이 36세. "결혼, 하고 싶죠. 혼자 살려고 한 것도 아닌데 늦었어요." 윤 대표는 착한 사람이면 'OK'라고 했다. 돈 안 밝히고 때 묻지 않는 사람이면 더 좋단다. 그리고 장남이면 좋겠다고 했다. "저 역시 4대(파평 윤씨 소종가)가 함께 살았어요. 자식도 그런 집안에서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우선은 사업입니다. 맛있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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