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남 유림 '명성황후 시해' 규탄 문건 발견

한성 주재 외국 공사관에 발송…'포고천하문' 초고 모습 드러내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듬해인 1896년 영남 유림들이 당시 한성(서울) 주재 외국공사관에 보냈던 '포고천하문'(布告天下文'사진)의 초고가 발견됐다.

27일 한국국학진흥원은 "포고천하문은 곽종석(1846~1919년) 선생 등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 말 유학자였던 홍와(弘窩) 이두훈(1856~1918년) 선생의 종손 이진환 씨(전 고령군수)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포고천하문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고종의 아관파천 등이 모두 일본의 만행이라고 규탄하면서 일본의 행동이 각국에서 비난받아 마땅함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생 등은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최종본을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주한 각국 공사관에 발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포고천하문은 독립기념관에 한 부가 소장돼 있고, 진흥원 내에 전주 류씨수곡파 문중에서 기탁한 또 다른 판본이 있지만 이번에 발견된 것은 이보다 좀 더 앞선 것으로 추정됐다.

기존 판본들은 대표자격인 곽종석 선생의 이름만 있지만 이 판본에는 함께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다른 유림들의 이름도 함께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홍와 선생은 면우 곽종석 선생뿐만 아니라 대계(大溪) 이승희(1847~1916년), 교우(膠宇) 윤주하(1846~1906년), 회당(晦堂) 장석영(1851~1926년),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년) 등 유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과 활발히 교류한 인물이다.

홍와 선생은 포고천하문 작성에 참여한 뒤 고향인 경북 고령으로 귀향, 내산(乃山) 서당을 열고 후진 양성에 전념했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배일 언론투쟁에 참여했다.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기획홍보실장은 "기존 포고천하문은 면우 선생이 혼자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자료로 볼 때 홍와 선생 외에도 여러 유림이 함께 초안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 전 군수는 이들 자료 외에도 국채보상운동이 대도시권 외에 고령 등 농촌 지역에서도 체계적'조직적으로 전개됐다는 것을 종합적으로 입증하는 자료 1만여 점도 국학진흥원에 함께 기증했다.

안동 엄재진 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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