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죽변항 해상 '쾅'…뺑소니 오리발 러 화물선 잡았다

구조 작업도 하지않고 도주…우리 어선 선장 한달째 실종

우리나라 어선을 충돌해 침몰시킨 후 달아났던 러시아 선원들이 사고 한 달여 만에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후 6시 50분쯤 울진군 죽변항 동쪽방향 약 68㎞ 해상에서 울릉도 어선 Y(9.77t'연안복합) 호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날 Y호는 울진군 후포항에서 수리를 마친 후 다시 울릉도 저동항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신고는 후포항에서 수리를 마치고 함께 귀항하던 B(7.31t'연안복합) 호가 "앞서 가던 Y호가 보이지 않는다"며 포항어업정보통신국에 접수했다.

B호의 선장(66)은 "Y호의 약 2㎞ 뒤편에서 따라가고 있었는데 잠시 자동조타 설정으로 전환하고 다른 볼일을 보던 중 Y호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당시 사고 해역에는 시속 13m의 북서풍과 3m가량의 파도가 치는 등 기상상태가 좋지 않았다. 풍랑에 의한 전복 사고의 가능성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복 사고의 경우 선박 자체 부력으로 얼마 동안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Y호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해경은 "Y호가 사라지고 화물선 한 척이 그곳을 지나갔다"는 B호 선장의 진술에 따라 충돌에 의한 선박 파손 및 침몰 사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해경은 사고 당시 항해기록에 따라 인근 해역을 항해하던 화물선 3척을 용의 선박으로 지목했다. 이후 육군 레이다기지의 항적도를 분석한 결과, 이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항해 부산 감천항으로 항해 중이던 러시아 화물선 P(7천t'냉동운반선) 호가 피해 어선인 Y호와 사고 해역에서 교차한 사실을 포착했다. 해경은 즉시 감천항에 정박 중이던 P호를 찾아가 선장 등 선원들을 조사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고 사실을 전혀 모른다며 완강히 부인했다.

이에 해경은 해경 잠수요원을 투입해 P호의 선수(배 머리부분) 밑바닥 부분에 붙어 있던 'F.R.P'(페인트 자국 등 충돌 후 묻어난 조형물 조각)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해 Y호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아울러 P호의 'V.D.R'(선박항해기록장치)에 남아 있던 대화 내용을 확보했다. 항해당직자들의 "사고가 난 것 같다. 어떡하느냐" 등 당황한 듯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 포항해양경찰서는 26일 어선을 충돌 및 침몰시킨 뒤 구호작업도 벌이지 않고 도망친 혐의(특가법상 충돌 도주 등)로 P호의 사고 당시 항해당직자인 러시아인 K(24'항해사)'A(24'갑판사) 씨를 구속하고 선장 O(50) 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사고로 당시 배를 몰던 Y호의 선장 K(59) 씨가 실종돼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Y호도 수심 2천 여m의 깊은 곳에 가라앉아 인양은 불가능한 상태다.

지난해 10월 31일 해상교통사고 후 피해자에 대한 아무런 구호조치 없이 도주했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 공포'시행됐다.

구자영 포항해양경찰서장은 "이번 사건은 관련법 개정 이후 선장과 승무원이 검거된 첫 번째 사례"라며 "해상 충돌 등 각종 해양사고와 범죄에 대해 철저한 증거확보와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범인을 끝까지 추적 검거하겠다"고 했다.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