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초심(初心)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머나먼 여행을 한다. 여행의 길고 짧음과 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는 끊임없이 흘러가야만 하는 여행길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롭지 못한 생활에 얽매여 몸부림치며 아옹다옹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삶이란 다양한 환경에서 생각이 각각인 사람을 만나고 타협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그 한가운데서 갈 길을 잃어버리고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초심(初心)이다.

초심은 처음의 나로 돌아가란 말이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초심은 무엇이 정확한 해답인지 안개 속을 헤맬 때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될 것이며 청명한 양심의 소리를 귀담아듣게 해 주는 정의의 도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갈등 속에서 세상을 보고 겪는다. 세상의 일은 합리적이어야 하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합리성이 지속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해 사회 질서의 맥을 끊어 버리는 경우도 흔히 본다. 역사책을 통해서든 언론보도를 통해서든, 사람들은 힘과 권위의 유지를 위해 합리성을 저버리다 보면 내리막길을 가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순간순간 망각을 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너무나 쉽게 초심을 잃고 있다는 증거다.

이탈리아 수사학자 겸 철학자 잠바티스트 비코는 이성의 야만을 경계하라 하였으며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즉, 사회의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원점으로 돌아가서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 시작을 탐색해보면 지극히 초라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며 마치 어른이 말도 못하는 어린애로부터 출발했듯이 사물도 특정한 시점에서 진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름의 법칙과 과정을 지닌 역사적 바탕을 근거로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당연히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다.

처음, 첫사랑, 첫눈. 모두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이다. 참 아름답고 선명한 이미지가 우리 가슴을 적셔온다.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흥을 주었다. 현실을 사는데 바쁜 30, 40대의 향수를 일깨워 주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독특한 설정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젊은 시절을 연상케 했다.

드라마에서처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방향이 정해지지 않을 때 한걸음 뒤로 물러나 스스로 나를 한번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처음의 생각과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지, 이기적인 마음으로 기울지는 않았는지, 내가 왜 이 자리에서 답답한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지를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보자.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

안 봉 전대구한의대학교 화장품약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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