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밤의 대통령

'밤의 대통령'을 아십니까? 원래는 알 카포네처럼 암흑세계를 장악한 마피아 두목을 뜻하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한 언론사 사장을 두고 '밤의 대통령'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는데,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사 소유자라는 점과 밤에 요정에 자주 출입했다는 점을 빗대 그렇게 불렸다. 어쨌든 '밤의 대통령'은 비공식적인 권력자를 뜻하는 말인 만큼 다소 음침하고 지저분한 느낌을 준다.

며칠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삼성을 두고 '밤의 대통령'이라고 지칭하는 멘트가 나와 지역 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시청자가 전화로 퀴즈를 푸는 코너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아 소개한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백혈병을 앓은 근로자를 주제로 한 독립영화와 관련된 기업은 어디입니까?' '1번은 LG, 2번은 삼성…'이라고 문제를 냈다. 이에 시청자가 '삼성'이라고 쉽게 정답을 맞혔다. 그런데 여성 진행자가 즉흥적으로 이런 멘트를 덧붙였다. '대한민국에서 낮의 대통령은 박근혜이고, 밤의 대통령은 삼성이다.'

물론 그 진행자는 작심하고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는 곧바로 또 다른 남성 진행자의 지적에 따라 사과하는 발언을 하고 넘어갔지만, 이를 들은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방송에서 이런 멘트가 나올 수 있는가?' '대단히 용기다' '혹시 그 말 때문에 사회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등등….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민초들조차 대통령 권력은 달랑 5년에 불과하고, 재벌은 자자손손 숨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삼성 입장에서야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삼성만큼 단군이래 전 세계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준 곳도 없는데 이런 대접을 할 수 있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삼성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무슨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재벌이 그만한 힘을 쥐고 있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한다.

국민들이 체감적으로 느끼는 것은 재벌들의 비도덕성과 무관용이다. 결코 재벌이 돈을 벌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재벌이 망하라는 것도 아니다. 돈을 번 만큼 사회에 베풀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도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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