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후섭의 "옛날 옛적에…"] 육척항 이야기

누구나 자기 재산은 아까울 거야.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서 남에게 베풀어주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니?

중국 청(淸)나라 때에 장영(張英'1637~1708)이라는 선비가 있었어. 장영은 부지런히 공부를 많이 한데다 인품도 너그러워서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어.

장영이 멀리 변방에서 나랏일을 보고 있을 때였지. 집에서 편지가 온 거야. 이웃집에서 장영의 집 쪽으로 넘어와 담을 쌓고 있으니 관리를 보내어 혼을 좀 내어 달라는 편지였어.

장영의 고향 이웃집에 오(吳)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담을 쌓으면서 장영의 집 쪽으로 석 자쯤 정도 넘어들어 왔던 거야. 한 자가 33㎝ 정도이니 석 자이면 한 1m쯤이지. 장영의 집에서는 장영이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니 옆집을 혼내어 달라고 편지를 보냈던 거야.

장영이 답장을 썼어.

천 리 밖 달려온 편지가 애오라지 담장 때문

이웃집이니 한 석 자쯤 양보한들 어떠하리.

만 리나 되는 장성은 지금도 여전히 서 있으나

오늘날 진시황은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답장을 받아든 장영의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 아들의 말이 맞다. 아마도 옆집에서는 마당이 좁은 모양이겠지.'

장영의 집에서는 마침 허물어진 담장을 고쳐 쌓으면서 옆집에서 넘어온 만큼 자기 집 쪽으로 석 자쯤 들여 쌓았어. 이것을 본 옆집에서는 부끄러워졌지. '아니, 우리가 넘어갔는데도 개의치 않고 도리어 자기 땅을 좁혀가면서 들여쌓고 있네. 안 되겠다. 우리도 들여서 쌓아야지. 그대로 쌓았다가는 크게 손가락질당하겠다.'

그리하여 오 씨네도 이미 쌓았던 담을 허물고 자기 집 쪽으로 석 자 정도 물려서 다시 쌓았어. 그러자 장영 집과 오씨네 집 사이에는 갑작스럽게 여섯 자 정도의 넓은 길이 나게 되었지.

"아이고, 길이 넓어지니 정말 시원스럽네. 우리 동네 사람 모두 편하게 되었어." 사람들은 장영에게 감사하며 이 길을 '육척항'(六尺巷)이라고 부르게 되었어. 서로 석 자씩 물려 쌓으니 여섯 자 곧 육척이 되는 것이지. '항'(巷)은 골목길을 말하고.

이 육척항은 지금도 안휘성의 옛 도시 동성(桐城)에 남아 있는데, 중국에서 유명한 골목 중 하나로 이름이 높단다. 이곳에는 장영을 칭송하는 글과 함께 육척항 내력을 새긴 큰 비석이 서 있어.

어때, '한 걸음 물러서면 세상이 더없이 넓어진다'는 옛 가르침이 떠오르지 않니? 장영은 좁아지는 땅보다 몇만 배나 더 큰 것을 얻은 것 같구나.

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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