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은 오직 근엄하고 지루한 학술대회여야 하고, 삶의 기쁨은 다른 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고질적인 이분법은 그 괴리감의 단적인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절실히 참고해야 할 화두는 이 간극을 넘어 어떻게 지적 열정과 일상의 실천을 하나로 융합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일 터이다. (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중에서)
2014년이 시작된 어느 날, 오랜만에 모임 선생님들과 순천으로 워크숍을 떠났다. 저녁을 먹으면서 가슴에 담은 말을 자유롭게 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내 나이가 40인데요,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책을 읽고 토론하는 지금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것도 행복합니다. 앞으로 10년 만이라도 이런 교육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공간만 마련해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토론교사지원단 소속 초등학교 K 선생님의 말이었다.
잠시 숙연한 침묵, 그리고 박수가 쏟아졌다.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아마 나였을 것이다. 몇 년 동안 대구 토론교육을 정착시키려고 고생했으면서도 그렇게 표현해주는 선생님이 고마웠다. 특히 힘들어하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 더욱 행복했다. 약속했다. 최소한 내가 이 일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할 거라고.
늘 힘들게 했던 부분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 아름다운 정책이랄 수 있는 책읽기, 책쓰기, 토론교육에 왜 많은 선생님이 등을 돌리고 있을까? 특히 가장 관심을 쏟아야 할 국어 선생님들이 정책으로부터 멀어져 있을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이 바로 자기주도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육의 주체들이 정책의 소모품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수행하는 중심이 되는 것, 그래서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그것. 그 길은 바로 축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축제처럼, 공부를 축제처럼 할 수는 없을까?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참가하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모두 축제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을까? 각자의 마음속에 담긴 교육에 대한 열정을 일상 속의 실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먼저 정책이나 행사가 지닌 공식적인 패턴을 버렸다. 소위 의전이라고 부르는 형식적인 부분을 최소화했다. 행사 진행도 가능하면 선생님이, 학생이, 학부모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장소도 교사와 학생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 현장을 활용했다.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교육 관련 사회단체, 대학부설사회교육원, 공공기관부설 평생교육원 등이 만들어지면서 공교육 외부의 교육활동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이나 지식에 대한 기존의 구도를 고스란히 유지함으로써 그들이 지향하는 교육이 일시적인 상품 이상의 기능을 하기 어려웠다. 바로 그 부분, 지식과 삶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겹겹이 봉쇄된 지식 생산자들, 소위 전문가들과 지식 수요자인 대중과의 경계를 지우고 싶었다.
대구독서교육지원단(공식적인 명칭은 북모닝대구지원단)의 대단함은 바로 그 지점이다. 그들은 권위보다는 진정성과 따뜻함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다가갔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라는 교육의 기본 배치가 변화되고 있었다.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자가 되기도 하고, 배우는 자가 가르치는 자로 바뀌기도 했다. 물론 그 배치는 강요된 배치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배치다. 배치는 단순히 자리를 채우는 과정이 아니다. 그 일을 하는 과정이다. 누가 그 자리에 배치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려는 그 일이 잘되어야 하는 배치, 아름다운 배치는 일을 축제로 만들기 시작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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