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책임 회피 유전병

나치 전범들은 '확신범'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만큼은-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쿨'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나치 2인자였던 괴링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법정 진술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합병에 대해 당당하게 자신이 한 일이라고 밝혔다. "나는 백 퍼센트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총통의 반대까지 기각시키고 모든 것을 최후의 발전 단계로까지 이끌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 전범들은 발뺌으로 일관한 잔챙이 '잡범'이었다. 일본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표현에 따르면 극동군사재판(일명 도쿄재판)의 피고나 증인들의 답변은 하나같이 뱀장어처럼 미끈하면서 애매했다. 검찰관이나 재판장의 물음에 정면으로 답하지 않고 그것을 회피하거나 혹은 물음의 진의를 예측하고 미리 선수를 치는 답변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 총사령관이었던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의 진술이다. "원래 일본과 중국 두 나라의 전쟁은 이른바 '아시아의 일가(一家) 내에서의 형제 싸움으로서… 마치 같은 집안의 형이 참고 또 참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폭한 행동을 그만두지 않는 동생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로, (중일전쟁은) 그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나머지 반성을 촉구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제 오랜 신념으로서…." 이 말대로라면 30만 명이 참살(慘殺)된 난징학살도 중국에 대한 사랑이다!

이런 식의 책임 회피에 대해 검찰관들은 넌더리를 냈다. 수석 검찰관 조지프 키넌의 최종 논고는 검찰관의 눈에 일본 전쟁 책임자들이 어떻게 비쳤는지 잘 말해준다. "피고인 전원으로부터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답변을 들었다. 그것은 그들 중 누구 한 사람도 이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침략 전쟁을 계속하고 확대해 온 정책에 동의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노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한다."

이런 책임 회피는 일본 우익의 유전병이다.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하겠다는 아베의 역사 부정은 그런 유전병이 추악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베의 언행에 미끈거리는 뱀장어처럼 전쟁 책임에서 빠져나오려는 잔챙이 일본 전범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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