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가 낳은 불세출의 타자 장훈(張勳)에게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다. 1957년 오사카 나니와 상고 재학 시절 발생한 하급생 구타 사건이다. 후배 버릇을 고친다며 야구부 선배들이 주먹을 휘두르다 큰 문제가 됐다. 당시 상황을 밝힌 그의 자서전 '투혼의 배트'(1991년)에 따르면 장훈은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부당하게도 현장에 있지도 않은 장훈에게 휴부(休部) 조치가 떨어졌다. 당시 폭력 등 말썽을 일으킨 학교는 경기 출전 금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사건 직전에도 나니와 상고 야구부는 패싸움으로 징계를 받고 막 출전 금지가 풀린 상태였는데 또다시 폭력 문제가 터지자 학교 측은 재일 한국인인 장훈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결국 그는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센바츠'(전일본고교야구대회)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센바츠 본선이 열리는 고시엔(甲子園) 구장을 밟아보지 못하고 좌절한 것은 장훈에게는 평생 한이 됐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대표로 뛴 안현수 선수를 둘러싸고 불거진 과거 쇼트트랙 대표팀의 폭행 루머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우리 체육계에서 선'후배 간 엄격한 위계질서가 간혹 폭력으로 표출되는 등 문제가 없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에서 뛴 외국인 선수 아담 윌크의 인터뷰가 국내 야구팬의 분노를 사고 있다. 아담은 USA투데이 등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생활은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면서 한국 야구 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고참이 후배에게 물을 가지고 오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을 듣지 않으면 후배를 때릴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저조한 성적 때문에 시즌 중에 방출됐다. 그럼에도 "언제든 일본으로 도망갈 준비를 해야 했기에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한반도 긴장 상황을 오해하고 과장되게 말한 점에 비춰볼 때 선수 인성의 문제가 더 커 보인다. 윌크는 실력은 물론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에 실패했으면서도 그 탓을 한국 야구에 돌렸다는 점에서 실망이 크다.
이번 설화(舌禍)는 퇴출된 외국인 선수의 험담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선'후배 위계 등 야구 문화나 분위기가 어떻게 비쳤는지를 생각해보면 웃고 넘길 일은 아니다. 체육계에 남아 있는 그릇된 집단 문화 등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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