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95주년을 맞았던 1일 대구 달성군 비슬산 정상 부근에서는 일제에 의해 1917년 일본의 국운을 짓누른다는 이유로 폐사됐던 대견사 중창을 마무리하는 개산(開山) 행사가 열렸다.
특히 대견사가 더 주목을 끈 것은 대견보궁(大見寶宮)의 존재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전국에서 8곳밖에 없다. 그만큼 대견보궁의 존재는 대견사의 무게감을 대변한다. 대견사 중창이 화젯거리가 되자 자연히 그 대경보궁의 정면에 걸린 현액을 쓴 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고승도 아니고 유명한 서예가도 아니다.
바로 서울대 법대 정종섭(사진) 교수가 주인공이다. 경북고(57회) 를 졸업한 경주 안강 출신인 그는 선친으로부터 어려서 한학을 배웠다. 글씨를 써 온 지 40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문인화에도 심취해 있다. 정 교수를 잘 아는 주변의 이야기로는 '대가'의 반열에 든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헌법학자이면서 문화재위원이기도 하다. 한중서예교류전 등에도 출품을 할 정도의 실력파다. 경주 광산서원의 '二善堂'(이선당)이라는 현액도 그의 작품이다.
대견사의 본사인 팔공산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의 거처에는 정 교수가 쓴 두 개의 족자가 걸려 있다. 원효대사의 명저 '대승기신론소'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難忍能忍菩薩行(난인능인보살행), 可言不言大人心(가언불언대인심)'이다. 참기 어려운데도 참는 것이 보살의 경지이고 말할 수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것이 큰 사람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대견보궁 현액을 쓴 것과 관련, 정 교수는 "옛날 큰 절이나 서원 건물 등의 현액은 당대의 명필이나 대학자들이 써온 것이 전통이었다. 내가 그런 반열에 드는지는 모르지만 성문 스님의 요청으로 쓰게 됐다"고 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당대를 호령했던 대학자들의 흔적이 지금도 전국적으로 큰 사찰에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천 은해사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19세기 중엽 9년간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마친 추사가 은해사 중건에 맞춰 '대웅전' '보화루' '불광각' 등 세 편액을 썼다. 또 절 입구에 걸려 있는 '은해사'현액과 '一爐香閣'(일로향각)이란 글씨 또한 추사의 글씨다. 추사의 글씨는 지금도 은해사 성보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