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문화도시인가?'
매일신문이 1997년 1월부터 30회에 걸쳐 연재한 시리즈물 제목이다. 당시 대구시장은 공사석에서 자주 '대구는 문화도시, 나는 문화시장'임을 강조했다. 그 나름 이유야 있었겠지만,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 시리즈물은 대구시장의 자임(自任)이 대구 문화예술계의 현실을 잘 모르거나, 일부 주변 인사의 이야기만 듣고 오버액션한다는 판단에서, 실상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여기서 문화는 정치 문화, 사회 문화, 음식 문화, 줄서기 문화처럼 어떤 현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줄임말이다.
그때 8명의 문화부 기자들은 맡은 분야에 따라 제도와 예산, 인적'물적 인프라, 대구예총과 문화예술회관 등 기관을 검증했다. 그 결과, 시장이 대구가 문화도시이며 문화시장이라고 자임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려웠다. 인적 인프라를 제외한 모든 것이 부족했다. 대구시의 지원이나 체계적인 제도가 허술하고, 문화예술계의 자생력이나 의지도 모자랐다. 특히 모든 돈을 틀어쥔 대구시의 횡포가 심했다.
이는 대구시민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잘 나타났다. '대구가 문화도시인가'라는 물음에 78%인 468명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시장의 말처럼 문화도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9%인 54명뿐이었다. '아니다'라고 답한 468명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339명이 볼만한 행사가 없다고 답했다.(중복 응답) 이어 시설 부족(76명), 낮은 시민 의식(75명), 홍보 부족(32명)이 뒤를 이었다.
17년이 흘렀다. 그 사이 대구 문화예술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공연장 인프라다. 시리즈 시작 때 객석 규모가 1천 석을 넘는 공연장은 대구시민회관 대강당과 문화예술회관 대극장, 경북대 대강당 정도였다. 그 뒤,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와 학생문화회관의 개관을 시작으로 2004년 아양아트센터, 2007년 수성아트피아, 2008년 계명아트센터, 2009년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대구시민회관 대강당은 지난해 전문 연주홀로 재개관했고, 대구미술관과 예술발전소도 개관했다.
문화예술 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문화재단도 생겼다. 대구문화재단, 대구오페라재단, 수성문화재단, 동구문화재단, 달성문화재단이 설립됐고, 달서문화재단도 곧 구성된다. 이뿐 아니다. 국제오페라축제는 지난해 10회째를 맞았고, 국제뮤지컬축제도 성황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가장 잘 드러나는 공연예술 분야만 본다면 대구는 '확실한' 문화도시, 또는 대구시가 지향하는 '공연문화 중심도시'라고 자부해도 좋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17년 전에 던진 '대구, 문화도시인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부정적인 답을 전제로 한 이 물음을 다시 되새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풍성함을 주도해야 할 대구 문화예술계가 오히려 빈곤을 겪고 있어서다. 외부에서는 대구를 '오페라와 뮤지컬의 도시'라 부른다지만, 역설적으로 사설 오페라단 수와 오페라 제작은 축제 개최 전보다 줄었다. 대형 공연장은 늘었지만, 대구에서 활동하던 오케스트라나 많은 중소 연주 단체는 없어지거나 활동이 뜸하다. 외형적 성장이 정작 대구예술단체의 자생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반면, 전문가 공모직이 늘면서 대구 문화예술계의 내분과 이들의 대구시 눈치 보기는 더욱 심해졌다. 대구시는 자율 뒤에 숨어 임명 때부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게다가 일부 직은 1년 계약이고, 연장 여부는 대구시 마음이다. 이러니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보라는 것은 빈말이고 시장, 부시장까지 갈 것 없이 문화체육국장 밑에 재단 대표, 과장 밑에 관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구시의 허울뿐인 자율을 깰 수 있는 사람은 문화예술인 스스로다. 이런 점에서 대구예총 회장, 대구문화재단 대표, 대구오페라재단 대표와 공연예술본부장, 대구시민회관장 등에 거는 기대가 크다. 구체적으로 이들을 거론하는 것은 대구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축이자, 모두 현직에 오른 지 5개월이 채 안 되는 '새내기'(?)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새내기는 겁이 없어야 새내기답다. 계약 기간이나 연임 여부에 관계없이, 말만 많은 뱃사공보다는 자신의 역량을 믿고, 소신을 펼쳐주기 바란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서로 자주 머리를 맞대 대구를 명실상부한 문화예술도시로 만들 어젠다에 대해서도 고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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